매실 익는 냄새에 선잠을 깬다. 베란다 항아리에서 매실이 익어가고 있다. 시큼한 듯 달달하니 그 냄새에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는 밀주를 담그곤 하셨다. 그때만 해도 쌀이 부족하던 때라 술 담그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가끔 관청에서 순찰을 돌았고 걸리면 벌금을 물기도 했단다.
우리도 형편이 그리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걸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수시로 술을 담갔다.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뒤란에 깔아놓은 멍석에 편 다음 거기에 누룩을 골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아 윗방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놓으면 하루가 다르게 술 익는 냄새가 났고 일주일 지나면 술이 완성되는 듯 했다.
누룩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말간 술이 고이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항아리에 사발을 담그곤 하셨다. 막걸리 한 사발에 두부김치를 곁들인 아버지는 잘 먹었다며 입을 손으로 쓰윽 닦고는 부엌문을 나서며 흡족해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막걸리를 걸러내고 난 지게미는 우리들 몫이었다. 감미료를 타서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알딸딸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는 학교 같다 와서 가마솥을 열어보니 솥은 텅 비어 있고 부뚜막에 술지게미가 있길래 찬장을 뒤져 감미료를 타서 한 사발은 먹은 듯 했다.
집이 빙글빙글 돌고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발을 디디면 허공에 걸음이 놓이는 듯 했다. 한참을 실랑이 한 후 그 후 기억은 없다. 들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저녁밥을 다 먹도록 내가 나타나지 않자 찾아 나선 것이다. 책가방이 마루에 있는 것으로 보아선 학교에서 돌아온 것은 분명한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란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동네사람들도 찾아 나섰는데 나중에 보니 마루 밑에서 자고 있더란다. 부모님이 놀란 만큼 꾸중도 대단했고 한동안 동네 사람들이 놀림감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새참으로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하곤 했다. 아랫마을 주막집에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가지고 아버지 일하는 논에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가다 지치면 한 모금 마시고 가다 힘들면 또 한 모금, 꽤 나면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한 모금, 쭐렁쭐렁 흘리기도 하고 아차 싶어 주전자를 열어보면 술이 너무 적은 듯하여 우물에서 물을 조금 타기도 했다.
술이 왜 이렇게 싱겁냐는 물음에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다시는 술을 먹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심부름하다보면 또 슬그머니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댄다. 그러고 보면 꽤나 일찍부터 술을 배운 셈이다.
막걸리를 먹다보면 그때의 술지게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거칠거칠하면서도 달달하니 목 넘김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의 막걸리가 생산 판매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말통 술을 주전자에 퍼 담아 팔았기 때문에 주모의 기분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술 배달하는 사람에 따라 술이 싱겁기도 하고 맛있기도 했단다.
모내기 하는 날이나 벼 타작하는 날 등 동네 큰 일이 생기면 말통 술이 배달되었고 양조장 집 딸은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막걸리의 인기는 그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매실 익는 아침, 항아리에게 풍기는 달달한 냄새가 오래 전 향수를 끌어낸다. 막걸리 한 병들고 아버지께 다녀와야겠다. 고인이 되신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