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루브르에서 조르주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를 보고 소름이 돋은 적이 있었다. 미술에 아무런 조예를 갖추지 못했던 당시에는 쇠라의 작품을 그저 예쁘장한 점묘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크기도 어마어마한 대작일 뿐만 아니라 화면에 스산한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물가에 앉아있는 소년의 몸은 동그랗게 구부러졌고, 구부정한 등을 따라 밝은 빛이 발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로 덮인 얼굴은 그늘졌고 시선은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은 채 멍하기만 하다. 사내들은 풀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소년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지만 소년을 둘러싼 인물들의 여유로움은 소년의 고독을 오히려 더 짙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인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파리의 세련된 도시민들의 여가생활을 그린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는 ‘아니에르의 물놀이’보다 점묘화의 기법이 완성도 있게 나타난다. 점들의 색깔은 대범한 원색들을 띠고 있고 점들마다 작가의 강한 터치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모든 점들은 강한 운동력을 지니게 되었고, 점들은 그대로 캔버스에 붙박여서 머물지 않고 사방으로 곧 튀어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되면 이 한가로운 오후의 풍경들은 곧 허물어지고 말겠지. 어쩌면 이 작품은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한가로운 일요일 풍경이라는 얄팍한 껍데기가 감싸고 있는 무(無)의 공간, 끝없는 허무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내 의견에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쇠라는 온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여 빛을 발하는 그 어떤 위대함을 좇았던 작가였지, 허무를 좇은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품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쇠라의 시도는 매우 집요했으므로, 당시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지식의 사료들을 가능한 모두 소화시켜 작품에 녹아들게 하고자 했다. 쇠라가 실험적인 색채연구가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 쇠라가 가진 지식은 색채와 광선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수학을 망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과 정치에도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기말의 예술가들이 대부분 정치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무정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를 추종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초현실주의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쇠라가 그처럼 진보적인 정치적 신념을 지니고 있었는지 직접 밝힌 적은 없었다.) 그리스 로마 문화도 연구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의 ‘판아테아제 프리이즈 행렬’처럼 현대인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미학자들은 ‘포즈서는 여인들’에서 여인이 취한 자세가 그리스 로마에서 가져온 모티브라고 말하곤 한다.
방대한 분야에 걸쳐 학자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쇠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작품을 사생아 취급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캔버스 앞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기가 일쑤였고, 작품을 미완성하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쇠라의 작품연대를 보면 그가 치밀함과 계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혼신을 다한 작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84년 ‘아니에르의 물놀이’를 시작으로 1886년에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발표했고, 1887년에는 ‘포즈서는 여인들’을, 1888년에는 ‘서커스의 퍼레이드’, 1890년에는 ‘샤위 춤’, 1891년에는 ‘서커스’를 발표한다. 모두 대작이었고, 점묘화였으며, 도시인들의 일상을 그렸고, 불과 1~2년의 간격을 두고 완성되었다. 작가가 20대에서 30대 초반이었을 때의 일이며, 쇠라는 7개의 대작 중 마지막 작품을 발표한 그해 독감으로 죽는다.
세기말이었다.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지성인들과 문학가, 음악가들이 이름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을 때이다. 과학과 문명의 진보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으며, 극단적인 사상과 생각들이 여물고 있었다. 곧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혹은 인간의 기술과 사상이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도처에 감돌고 있었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예술가의 테제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쇠라는 기묘한 시대의 정점을 살다간 작가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세기말의 풍경과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