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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난 민속촌 거지가 될거야?

 

출근을 앞둔 딸과 사위의 안색이 여느 때와 다르게 밝은 빛이 아니라 심각하게 경직되고 굳어있다. 딸네 식구 4명과 함께 살아 온지 어언 10여년 세월동안 오늘처럼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출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마치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기로 했다는 심청이의 이야기를 듣고 고뇌하는 심봉사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장인, 장모에게 불만이 있는 걸까? 아니면 부부사이에 다툼이 생긴 걸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불면서 궁금증과 불안한 마음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첩첩히 쌓여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요즘 노부모 모시는 것 자체가 젊은이들에겐 고통이라 대부분이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사례가 많다는 뉴스가 뻔질나게 매스컴을 수놓는다. 고생과 피눈물로 자신의 세상은 없는 듯 오로지 자식만을 위하고 사랑하며 악착같이 살아온 노인세대에게 요양병원이나 시설 입소는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뒤늦게야 그것을 깨달은 요즘 ‘돈 다 쓰고 죽자는 모임’ 줄인 표현으로 ‘쓰죽회’가 노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강조하는 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어 이제 낯선 풍자용어가 아니다.

학교의 교과 성적이 크게 탁월하지 않지만 함께 살면서 우리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한 고교 2년생 외손자 병우(가명)가 있다. 키도 훤칠하고 밝은 얼굴에 순진하고 매사 성실한 편이다. 우리 노부부에겐 눈에 넣기도 아까운 응석받이 귀여운 외손자이다. 유아기때는 병우를 하루 한시라도 보지 못한 그날은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 부부의 삶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했으며, 특히 외할아버지인 나는 더욱더 그랬었다. 녀석의 친가인 평택 할아버지 댁에서 유치원 다닐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간만 나면 장난감은 물론 손주가 좋아할 거라 생각되는 각종 놀이용품을 사서 들고 수원에서 평택까지 나르곤 했다. 그때마다 병우는 외할아버지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기에 ‘이 아이가 벌써 영양가 있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주위사람들은 농담을 하곤 했다. 해서 그런지 외할아버지인 나와 병우는 어느 손자보다도 끈끈한 정이 앞선다.

3월 초 이젠 내년이면 고3!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학년! 교과성적 발달이 탐탁지 않아서 장차 진로가 걱정이 된다고 생각한 딸 부부는 아들인 병우에게 장차 진로를 물어보았단다. “난 민속촌 거지가 될거다!” 서슴없이 툭 튀어나온 그 한마디… 아이의 부모는 대학시절 4년간 장학생이었고 현재는 S시 중견 부부공무원으로 존경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첫 번째 아들이고 유별나게도 부부교육자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한 아이라 나름대로 자식에게 큰 꿈을 기대고 있었는데… ‘거지가 되겠다니….’ 지금까지 좋다는 학원은 다 보내주고, 하고 싶다는 것은 모두 들어주다시피 했는데…. “거지가 왠 말이냐”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휘청거리더란 것이다. 한 대 쥐어박았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자초지종 사연을 알게 된 우리 부부는 병우에게 접근하여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거지가 되겠다’는 게 무슨 뜻인가? 알아본즉,

“응, 난 거지가 될 거야! 수원역에 가면 노숙자들이 많거든요. 왜 거지나 노숙자가 없어지지 않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면서, 거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 되려고요” 서슴없이 청산유수로 내뱉는 병우의 말! 말! 말! 우리 부부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도 깊은 뜻을 갖고 있는 외손자 병우가 우리 품안에 있다니…’ 어찌나 기쁜지 나도 모르게 뜨거운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 흥이 돋는다.

외손자 병우가 3살 때 일이다. 택시가 주유소에 주유하려 가는걸 보고, “뿌지뿌지(할아버지! 할아버지!) 빵빵이(차) 맘마(밥) 먹으러 간다” 하던 아이 아닌가! 늘상 외손자 병우의 영특함을 친지들에게 자랑할 때 쓰던 나의 단골 메뉴였다.

거지가 되겠다는 나의 외손자 병우의 마음이 참으로 예쁘고 기특하다. 누가 뭐라고 주책 맞은 노인네라 할지언정 정말 칭찬하고 자랑하고 싶다. ‘딸네부부야! 걱정말거라, 수심을 펴라, 병우는 누구 못지않는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고 동량이 되리라 확신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병우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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