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괴물이 되는 좀비(zombie).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선보인 이후 이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3년 전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워킹 데드’도 그 중 하나다. 인기에 힘입어 여러 개의 시리즈가 등장해 사람들의 좀비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죽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선망 탓인지는 모르지만 좀비에 대한 호기심이 관심 차원을 넘은 지 오래다. 공포 이야기 속에 나오는 되살아난 시체라는 본래 뜻이 진화해서다. 지금은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또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재난을 말할 때도 좀비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들이 실제 일어나는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흔들리는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최근엔 기업조직 안에서 자기 자신이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나 부하·상사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직원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며, 관료화된 사회조직에선 요령과 처세술만 터득하여 모든 일에 무사히 지내려는 소극적인 사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꼭 사람을 먹겠다고 덤벼야만 좀비가 아니라는 의미다. 기업을 도산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부류가 다 좀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재계도 예외는 아니다. 세금 한 푼 안 내고 떵떵거리는 졸부들, 뼈 빠지게 일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주들, 온갖 탈법 불법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지도층 행세를 하는 사람들, 성실한 이들의 피와 땀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좀비들이 현존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좀비기업도 대거 등장,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금만 축내는, 그야말로 ‘흡혈 기업’인 이들을 정부가 대대적으로 손볼 모양이다. 국민 세금을 갉아먹고 있는 악덕기업의 척결방안, 늦은 감은 있으나 잘하는 일이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