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생신이라 나가 살던 형제들이 다 모였다. 원래는 며칠 있어야 하겠지만 평일에는 모이기 쉽지 않아 가까운 휴일로 잡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추석에 참석하지 못했던 조카딸과 막내 시동생도 환한 얼굴로 들어선다. 갑자기 온 집안이 그득해진다. 추석에 다녀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새 얼굴이 달라진 듯 유심히 바라보신다. 어디 축간 데는 없나 아들들을 살펴보시고는 손자들이 대견해 등을 두드리시고 꽃처럼 피는 손녀딸을 연신 쓰다듬으신다. 오느라 힘들었다며 마실 것이라도 내고 싶어서 연신 분주하시다.
손자들이 사온 케잌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는 것에 맞춰 어머니께서 웃음 가득하신 얼굴로 촛불을 끄시고 경쾌한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젊어서부터 여러 자녀를 낳아 기르시면서 고생을 하신 어머니도 이날은 새색시로 돌아가시는 듯하다. 음식을 앞에 놓고도 좋아하는 술이 먼저 오가고 몇 순배 돌고 나면 뚝뚝한 남자 형제들이라 자주 통화도 못하고 살다가도 이런 날은 지난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께서도 덩달아 웃으신다. 웃을 때마다 잡히는 깊은 주름살 위로 사진으로 본 젊으실 때의 얼굴이 아른거리자 왈칵 눈물이 솟는다.
우리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용하는 말 중에 얼굴이라는 말의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한다. 토끼가 드나드는 굴을 토끼굴이라 하고 호랑이가 살면 호랑이 굴이라고 하듯 얼굴은 사람의 얼이 깃들인 굴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하니 얼마나 깊은 뜻을 지닌 말인지 새삼 감탄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얼굴 표정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따라 그 사람의 얼이 어떤가를 나타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기들의 얼굴을 보면 동그스름한 얼굴이 예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기들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본 적이 없다. 이는 아기들의 얼이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며 욕심 많은 사람의 얼굴은 그 얼이 욕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고 수심에 가득한 얼굴은 그 얼이 근심에 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쁨이 넘치는 얼굴, 자애로운 얼굴, 사나운 얼굴, 공포에 떠는 얼굴 그 어느 하나도 자신의 얼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얼굴은 없다고 본다. 무엇으로 감춘들 자신의 얼을 숨길 수가 있을까?
얼마 전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생겼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는 의료진의 지나친 욕심에서 빚은 의료사고이지만 그 원인은 자신의 얼을 가꾸는 일을 소홀히 하고 얼이 머물고 드나드는 통로를 가꾸는 일에 치중한 나머지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는 데서 빚은 사고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는 미의 기준은 시대나 개인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어차피 모든 얼굴은 더 예쁠 수도 조금 덜 예쁠 수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다 조화를 이루게 만들어져 있고 이를 인위적으로 손질을 했을 때 자칫 균형이 무너져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계속 병원을 찾게 되고 마침내 중독에 빠지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깊어가는 가을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들국화도 은행잎도 각자의 얼굴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저마다의 향기와 결실로 주위를 아름답게 가꾸며 기꺼이 한 생을 살다가 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