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네 말
/이시영
이렇게 비 내리는 밤이면 호롱불 켜진 호야네 말집이 생각난다.
다가가 반지르르한 등을 쓰다듬으면
그 선량한 눈을 내리깔고 이따금씩 고개를 주억거리던 검은 말과
“애들아, 우리 호야네 말 좀 그만 만져라!” 하며
흙벽으로 난 방문을 열고 막써래기 담뱃대를 댓돌 위에 탁탁 털던
턱수염이 좋던 호야네 아버지도 생각난다.
날이 밝으면 호야네 말은
그 아버지와 함께 장작짐을 가득 싣고 시내로 가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바지런한 발굽 소리르 따각따각 찍으며.
- 시집 ‘호야네 말’/창비시선, 2014
여름날 긴긴 장마에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그치지 않는 빗줄기는 옛날 동시 상영하던 동네 극장 스크린 같습니다. 비 영사막에 비친 그림은 눈에 선합니다. 선량한 말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아버지가 있고 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래전 백석 시인이 우리에게 건넸던 아름다운 말들이 이 시 속에도 속닥거리며 담겨있습니다. 아쉽습니다. 이 여름 내리는 빗줄기 속에는 아무런 잔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시간만이 아닙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역사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호야네 말’처럼 살아 숨 쉬는 추억을 모두 삭제 한 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박완서 선생이 쓴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굳이 읽지 않더라도 비 내리는 밤이면 누가 ‘그 많던’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일까요.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