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영랑은 북의 명인이었다. 그리고 북을 사랑했다. 말년에 자연에 묻혀 북과 벗 삼아 살 정도였다. 생전에 동편제 판소리 명인 송만갑과 특별히 가까웠던 것도 이 같은 북을 매개로 한 교감 덕분이다. 김영랑이 북에 매료된 것은 마음속을 울리는 소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감정을 담은 ‘북’이란 시도 남겼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보아/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헛 때리면 만갑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북은 오히려 컨닥타-요/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은 온통 잊으오/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우리 북소리는 예부터 사람의 심장박동소리와 비슷하다고 했다. 특히 삼현육각 연주에 쓰이는 좌고, 행진음악에 쓰이는 용고가 그렇다. 해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제사나 각종 예악(禮樂) 행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악기로 여겼다. 그런가 하면 전투 때마다 군대 선두에 배치되어 전투의 시작을 알리거나 군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진격을 독려하는 악기로도 활용됐다.
오늘날 전통음악 연주에 쓰이는 북은 20여 종이 있다. 좌고, 용고를 비롯, 북춤에 사용하는 교방고, 불교의식에 쓰이는 법고, 사당패나 선소리꾼이 소리하며 치는 소고, 판소리 장단을 맞추는 소리북, 농악에 쓰이는 농악북, 농부들이 일하며 치는 못방고 등이 그것이다.
최근 이런 전통 북 중 사물놀이에 사용되는 북의 소리가 급성 알레르기성 쇼크 증상을 억제한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매우 고통스럽거나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할 때 전통 북소리가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는 있었으나 실험에 의해 효과가 증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험을 주도한 경희대 한의대팀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에 특허까지 출원했다고 한다. 우리 인체에 미치는 ‘소리’의 영향력, 다시 한 번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