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성경에는 환영 속에서 마른 뼈들이 춤을 추고, 계시가 적힌 두루마리들이 창공에서 펼쳐지며,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이 달린 짐승이 나타난다는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기이한 환상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선지자가 현대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러한 이가 현대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1875~1961)을 예로 들어도 좋을 것 같다.
융은 1913년 의과대학을 사임하고 갑작스럽게 은둔생활로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자신의 내면에 고도로 집중하였으며, 정신적·심리적으로 고립되었고, 종교에 천착했다. 하지만 융이 눈부신 학문적 업적을 이룬 것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그러한 업적들이 쌓인 것도 이때였다. 이 시기에 저술한 많은 책들 중에서 특이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붉은책(the Red Book)이라 불린다. 이 책에는 융이 은둔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환영들, 꾸었던 꿈들, 혹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두서없는 거친 에세이들이 담겨져 있고, 융은 책에 직접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글과 그림들은 인간의 영혼과 내면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곧 대륙에 불어 닥칠 재난의 예고들과 같은 예언적인 내용도 담겨있었다. 기이한 문장들과 그림들은 과학자가 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생소했었고, 융 자신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원치 않아 그의 사후 유족간의 어려운 교섭 끝에 2009년에나 세상에 공개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칼 구스타브 융은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분석심리학자다. 융은 프로이트와 사제지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프로이트의 논문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융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1906년부터 1913년까지 활발히 서신을 주고받거나 직접 만나 오랜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프로이트의 주장에 대한 반감이 유럽 전역에 만만치 않았었지만, 융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프로이트를 스승으로 대우했다.
그러나 융이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생각들을 고도화해나감에 따라 더이상 프로이트와 노선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프로이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시킨 위대한 이론가였지만 환자들의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 특히 성적인 경험을 토대로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융은 개인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징조와 꿈이 반드시 개인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원시시대부터 축적되어 온 역사, 다양한 상징체계를 반영할 수 있다고 여겼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철저히 과학의 범주 안에 두려고 했으나 융은 결코 지성만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꼭지이니 만큼 융이 레드북에 직접 그렸다는 삽화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간혹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 피카소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닌 작품을 그리곤 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어린 아이, 정신병자, 장애인과 같은 이들에게서도 그러한 재능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이 하는 미술을 ‘아르브뤼(Art Brut)’라고 부른다. 물론 저명한 학자였던 융은 사회적 약자는 아니었지만 다소 강박적이고 현란하며, 초자연적 힘을 발산하는 아르브뤼 류의 작품들과 비슷한 이미지들을 그렸던 것이다. 허공으로 폭발되는 불길, 꿈틀대는 괴물들, 그 안에서 기도를 하거나 검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형상이 퍽 강렬한 생채와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융은 이 삽화들을 그리며 만다라의 기법을 차용했기 때문에 각 형태마다 독특하면서도 반복적인 무늬가 팍팍하게 채워져 있다.
지난 글들을 통하여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이론들이 주류 예술가들을 통해 어떻게 예술로 펼쳐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존의 예술 형식을 벗어나 새롭고도 혁신적인 형식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은 과학적인 이론, 문학, 철학들을 열렬히 수용했다. 하지만 이 비슷한 시기에 예술가가 아닌 이들이 환영, 꿈, 직접적인 영감을 통해서 훌륭한 작품들을 그린 경우가 종종 발견되곤 하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비록 미술사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입지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들을 반증하고 있으므로 예술의 본질을 연구하는데 있어 좋은 참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