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웅장하고 늠름한 건물인 주합루는 어제각(御製閣)의 용도로 정조에 의해 부용지의 북쪽 언덕 위에 건립되었다. 언덕은 전체가 화계(花階, 경사지를 계단 모양으로 단을 만들어 꽃을 심는 전통정원)로 구성되어 있고, 또 주합루의 정문인 아름다운 어수문(魚水門)은 화계와 함께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주합루의 건축적인 부분을 보면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2층 건물이다. 4벌대의 화강석기단 위에 건물이 앉아있는데 기단의 높이가 평균 1.5m로 전통건축에서는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기단은 건물의 위계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높은 기단은 지면에서 멀리 떨어져 습기의 피해가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 계단은 동서남북에 모두 설치되어 있으며, 그 계단 수가 6개로 다른 건물에 비해 많은 편이다.
1층은 창건 당시 규장각으로 왕실도서관으로 만들어졌으나 구한말 연회장으로 용도가 변하였기에 창건 시기의 평면구성도 변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 점쳐진다.
크기는 총 20칸으로 6칸은 문이 달린 실내이고, 16칸은 문이 없는 퇴칸이다. 퇴칸의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통로의 역할을 하고 2층을 올라가는 계단은 퇴칸의 북쪽 양편에 설치되어 있다.
중앙부 6칸은 2칸씩 3개의 방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중앙 칸은 우물마루로 구성되고, 양 측면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창건 시기에도 같은 평면이었다면 중앙마루방은 중요한 책이나 자주 보는 책을 보관하였을 것이고, 온돌방은 책을 보는 열람실로 추정된다.
모든 천장은 목재 반자로 되어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온돌방(침실)에서는 흙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반자를 사용하고, 그 이외의 곳은 골조를 노출하는 연등 천장이나 목재 반자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곳 온돌방에는 종이반자 대신 우물 반자를 사용하여 이곳이 침실보다는 업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알 수 있다.
2층은 1층과 같은 평면 형태이며, 다른 점은 중앙 6칸이 1층과 달리 모두 마루로 되어있는 점이다. 2층 주합루는 선왕의 영정(影幀)을 모시는 곳으로, 다른 영전(影殿)인 전주 경기전(慶基殿)과 수원 화령전(華寧殿)은 당시 온돌이 설치(승정원일기, 고종9년 6월 5일)되어 있었기에 이곳도 온돌을 설치할 필요성이 있으나 2층에 온돌을 설치하는 것은 많은 공력이 들어가기에 무리한 공사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 칸은 벽체가 없이 세살문으로만 구성되어 외부 햇빛이 많이 들어와 실내가 밝고 화사하다. 아마 연회장으로 사용하면서 벽의 구성방법이 변했을 가능성이 보인다.
사묘건축(祠廟建築-종묘, 신선원전, 화령전, 경기전)을 보면 정면만 문이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 3면은 벽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곳도 중앙 칸의 남쪽만 문(門)이고 나머지는 벽체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기둥의 형태는 외부가 사각이고, 내부는 원형으로 되어있다. 기둥의 모양은 위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원기둥을 높게 보고 각기둥을 낮게 본다. 또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동양사상에 의하여 사랑채는 원기둥을 사용하고, 안채는 각기둥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기법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건물의 위계를 높이고자 할 때, 비싼 원기둥을 외부에만 사용하고 내부는 각 기둥을 사용하여 경제적으로 건축한 사례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주합루에서는 기둥을 반대로 사용하였다. 이는 어진을 모시는 내부는 국왕의 공간으로 하늘이기에 원기둥을 사용하고, 퇴칸은 신하의 공간으로 땅을 의미하기에 각기둥을 사용하였다고 본다. 이런 기법은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경복궁 경회루에도 보인다.
정조가 주합루를 창건할 때 경제적이면서도 위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그의 뜻대로 검약하면서도 늠름한 건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