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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길 위의 여인들

 

가을이 깊어간다. 언제까지 푸를 것 같던 나무들이 이별의 날을 위한 치장을 벗기 시작하고 산과 들을 오가던 단풍보다 고운 빛깔의 옷차림들도 멎어가고 있다.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앞세워 축제가 가장 많은 시기 또한 가을이다. 그 중에서도 먹거리를 가장 앞에 내세운다. 힘들게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도 찬바람이 불면 슬슬 꾀가 나기도 하고 여행지의 풍광과 미각에 동요되기 십상이다.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이야기가 아마 가을 전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솔깃하고 먹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기회가 되어 친구들과 전어를 먹어보니 기대했던 맛과는 조금 달랐다. 자주 자리를 뜨면서 먹어서 그랬는지 다른 생선구이보다 더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잔가시를 발라내기에 바빠 무슨 맛인지는 고사하고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푸념이 이어진다. 그 며느리가 맹추니까 그렇지, 벼르고 별러 기껏 가출을 하고 이런 거나 먹겠다고 집으로 돌아와? 팔자도망은 못 한다더니 하며 잇새에 낀 잔가시를 혀끝으로 애써 밀어냈다.

어디 세상에 맛있는 게 전어밖에 없으려구, 아침저녁 쌀쌀해 지면 싱싱한 무에 새로 짠 들기름 한 방울 넣고 생채 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연하고 통통한 아욱 다듬어 으깨 쌀뜨물 받아 넣고 마른 새우 국물내서 된장국 끓이면 얼마나 맛있는지 그건 아마 요즘 새댁들은 상상도 못 할걸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저녁을 먹으며 아욱국 얘기를 했더니 며칠 후 이웃 할머니께서 아욱을 뜯어오셨다. 아욱국을 먹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그날도 들에 밥을 차려 내가고 아이들까지 먹이고 여인들만의 식사시간이었다. 큰 상을 펴고 둘러 앉아 정담을 나누며 함께 하는 식사는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그 때도 아욱국이 나왔는데 누군가가 가을 아욱국은 하도 맛있어서 시집간 딸이 와도 문을 걸고 먹는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때는 그냥 그런 말도 있으려니 하고 이내 잊어버렸다.

시집간 딸이 오면 반가운 나머지 뛰어 나가 데리고 들어올 법한데 야박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말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친정 출입이 쉽지는 않았을 터에 아욱국이나 끓여 먹는 잔치도 제사도 아닌 평범한 날에 불쑥 찾아오는 딸을 그냥 집으로 들여놓기가 망설여졌을지도 모른다. 고추 당초 보다 매운 시집살이 못 견디고 친정으로 달려온 딸을 방으로 들이면 그 결혼은 깨질 수밖에 없고 소박데기로 살아야 하는 딸을 생각해서 문고리를 잡고 속으로 딸보다 더 크게 울었을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린다.

집 나가 고생하며 떠돌 며느리 생각에 전어를 구우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부모 심정 또한 오죽했으랴 싶다. 전어가 다 타서 버릴지라도 며느리가 돌아오기 전에는 한 점도 입에 대고 싶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시부모님 속이 전어보다 더 시커멓게 타고도 남았을 일이다. 요즘은 결혼 생활을 하는 당사자들보다 양가의 부모들이 더 날을 세우고 자기자식 역성을 들다 파경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의 미각은 다양해서 어떤 음식이 좋다고 정하기는 어렵다. 철따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일도 좋겠지만 평화로운 가정을 생각하던 어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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