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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칼럼]토끼와 고양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는 말이 있다. 토끼와 관련된 것으로는 ‘계수나무’, ‘별주부전’,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별주부전의 토끼는 꾀가 많지만 거북이와 경기하는 이야기에서는 얕보면서도 게으른 토끼이다.

사람들 손에 길들여졌어도 여전히 야성을 잃지 않고 사냥할 목표물을 향해 집념을 보이는 고양이와 꾀가 많은 만큼 게으른 토끼가 사람들이 수 없이 오가는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안 어린이 놀이터 주변을 중심으로 함께 먹이를 나누고 살을 비비며 공생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은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멈추게 한다. 자신들을 해하지 않고 가끔 귀여워 해주며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값으로 종종 먹이까지 가져다주는 주민들을 고양이와 토끼가 마다할 리 없다. 경계심이 없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애완으로 키우다가 버린 동물이라는 정도 짐작한다.

버려진 고양이는 길 도둑이 되어 떠돌다가 짝을 만나 번식을 하면서 무엇이라도 잡아먹으며 살아가겠지만 애완이었던 토끼는 자연에서 풀을 뜯더라도 장기간 그런 상태로는 생명을 부지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한 마리 토끼는 아파트 안에서 짝을 찾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런 토끼에 비해 고양이는 생존하기에 더 불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토끼의 먹이는 지천에 깔려있지만 고양이는 사냥을 해야만 살 수 있다. 주민들이 눈길을 주고 먹이를 가져오는 것은 고양이와 붙어 있으면서 사람이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는 토끼가 신기하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고양이가 토끼를 보살피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토끼로 인해 고양이는 먹이까지 덤으로 얻어먹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토끼와 고양이가 싸워도 토끼가 결코 약세는 아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고양이와 토끼가 각자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주민들의 이목을 받아 다양한 먹이를 받을 수 있고, 해코지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고양이가 토끼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토끼와 고양이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상부상조하는 공생관계도 아니다. 그러나 추운 날 서로 털을 대고 보온하며 잠들 수 있을 것이고, 고양이가 토끼 보다는 귀가 밝아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꾀 많은 토끼일지라도 그 두뇌로는 자신이 고양이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토끼도 고양이와 같이 있다고 해서 자신에게 별다른 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에 고양이 곁에 있는 것 같다. 오히려 토끼가 혼자 아파트 단지를 어슬렁거릴 때 보다 고양이와 함께 있을 때 주민들의 주목을 떠 끌고 먹이도 풍부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 둘에 관해 역사를 서술한다면 고양이, 토끼의 개체 역사, 그리고 두 개체의 공존의 역사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아파트 단지 놀이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두 마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처음 만나게 된 이후 서로의 경계와 대치, 그리고 타협하면서 공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컨대 토끼와 고양이는 서로 종이 달라서 먹이도 다르기 때문에 먹이문제보다는 일차 비바람을 피할 안전한 보호처 확보를 위해 서로 영역다툼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 후 주민이 건네주는 다양한 먹거리를 통해 고양이는 사냥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토끼도 사람의 음식물을 섭취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역분쟁은 해결되었을 것 같다.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시각은 좋은 편, 나쁜 편이 없고 좌파 종북도 없으며, 우파도 없다. 굳이 편이 있다면 정작 토끼와 고양이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이들을 방치하자는 입장(진보?)과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재미에 가끔 먹이를 주면서 소극적 보호를 선호하는 주민들(보수?)로 나뉜다. 요즘 한국사 국정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럽다. 국민들이 토끼와 고양이처럼 말을 못해서도 아닌데 들어야 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위정자들에게 토끼와 고양이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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