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빠르게 비워진다. 나무가 잎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니 잎이 나무를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봄에 새순을 꺼내고 여름한철 무성했던 잎들, 바람의 장난질에 가지가 꺾이기도 했지만 봄에 가지치기 한 옹이에 새순이 내고 열매를 매달았다.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툭툭, 떨어지는 은행잎을 본다. 노랑은 그리움이라 했던가. 며칠 후면 장가갈 아들 옷가지며 소지품들을 챙겨 보내는 마음이나 때가되면 잎을 떨어내고 빈 몸으로 겨울은 준비하는 나무나 같은 심정이 아닐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얼른 장가들여 분가시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날짜가 다가오고 제 살 터전을 찾아 움직이는 아이를 보면 자꾸 가슴한 쪽이 시려온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기쁜 일이라고, 눈 만 뜨면 매일 볼 텐데 하면서도 가슴은 먹먹해진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이들 살 집 청소하고 수리하면서 손톱이 다 닳도록 닦아내고 또 닦으며 잘 살기를 바라던 마음이며 집이 새롭게 단장되고 살림이 들어차면서 제법 신혼의 맛과 멋이 묻어나는 것이 흐뭇하고 대견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서운해진다.
아들은 장가들이면 이미 내 자식임을 잊어야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 딸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며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등 참담한 말들을 하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니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그렇게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 참고 참다 서로의 감정이 나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쏟아내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서로의 서운함과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서로 좋은 관계에서 풀어야 한다는 생각과 다짐을 거듭해본다.
가급적 딸의 입장에서 며느리를 보려한다. 내 딸도 시집보내면 똑 같은 처지가 될 테니 말이다. 타지에서 직장생활하다 쉬는 날 집에 오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자고 뭐 먹고 싶다고 응석부리면서 정작 제 방하나 청소도 안하는 딸이나 비슷한 나이에 새 살림을 시작하는 며느리나 살림에 서툴기만 마찬가지 일 게다.
그녀도 친정에서는 귀염 받는 딸이었고 철부지였겠지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고부간의 사이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자식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가업을 이어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문제를 부모가 해결해왔다.
경제적인 면부터 시작하여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기면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다 보니 나이는 서른이 넘었어도 늘 어리기만 하다. 그런 자식이 분가를 하여 새살림을 시작한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자식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대우하고 책임을 넘겨주려 한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스스로 극복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봐 주는 역할자로서 자리를 지키려 한다. 물론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 하겠다 다짐해본다.
사람사이의 문제가 어느 한 쪽 일방적일 수는 없다. 노력한 만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만큼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새사람을 들이면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부모로서 부족함이 없는지 지나친 욕심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은행잎이 쏟아진다. 머잖아 빈 가지로 서서 봄을 기다릴 나무에 지긋이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