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과 분노를 못 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는 고흐의 일화는 예술과 광기의 섬뜩한 관계를 일깨워준다. 고흐의 광기는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어서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작품들은 누구하나 없는 적막한 풍경을 그렸지만, 캔버스는 이글거리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허공은 대기의 흐름도, 바람도 아닌 기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가득 차 있고, 까마귀들이 날고 있는 밀밭이나 캔버스를 수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나무, 산과 집들도 진짜로 꿈틀대고 있는 것처럼 매우 역동적이다. 두 작품은 각각 1890년과 1889년에 완성된 것으로 이 시기는 고흐가 자살 직전 샹레미 정신병원에 머물렀을 때였고, 이 시기의 다른 작품들도 이처럼 우울과 광적인 에너지를 잔뜩 머금고 있다. 고흐 말고도 뭉크, 달리, 카라바조, 피카소 역시 우울과 광기를 지녔던 예술가들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견디기 힘든 생의 비극들을 겪기도 했지만, 어쩌면 예술이라는 인간의 활동자체가 광기와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진짜 정신질환자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이들도 있다. 이들은 살면서 한 번도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그들의 작품은 역동적인 기운이 가득하고 활력과 원시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스위스 베른 한 정신병원에 머물고 있었던 아돌프 뵐플리라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곤 해서 연필 몇 자루를 단 이틀 만에 다 써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뵐플리는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던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10살이 되기도 전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는 여러 농장을 떠돌며 살다가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사랑은 좌절되었고, 이후 수차례 강간미수로 체포되었다가 1895년에는 발다우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병실 벽에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종이와 그림 도구를 얻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67세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그가 남긴 작품들로 엮은 책은 2만5천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그의 활동은 미술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음악과 문학을 넘나들었고, 페이지에는 그림과 함께 빼곡하게 악보나 글씨가 적혀 있곤 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본 것은 정신과 의사들이 먼저였다. 모르겐탈러라는 정신과 의사가 발다우 정신병원에서 뵐플리를 관찰하고 그의 작품을 모아 1919년 ‘광기와 예술’이라는 책을 발표하기 전에도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인 체사레 롬브로소가 ‘천재와 광기’(1864)라는 책을 발표했었고, 영국의 신경학자 존 허글링 잭슨도 정신착란이 창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한의정, ‘아르 브뤼의 번주와 역사에 관한 연구’, 현대미술사학회, 2013).
인간의 무의식을 예술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던 초현실주의 작가들도 광인들의 예술에 관심을 가졌는데, 막스 에른스트는 1910년 정신의학 강의를 수강하고 이들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자 자료를 모았다. 장 뒤비페는 광인들의 예술을 하나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자들의 작품을 통하여 어린아이나 원시인들이 그린 그림과 같이 거칠고 투박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에너지를 발견하였고, 예술의 본원적인 가치를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작품들을 ‘아르브뤼(Art Brut)’라 명명하였고, 뵐플리 작품 외에도 여러 정신질환자들의 작품들을 수집하였으며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화풍을 수용하여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생기 넘치는 그림을 직접 구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아르브뤼가 공공기관과 법인의 후원을 널리 받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비제도권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아르브뤼 작품을 별도로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 세계 각처에 생겨났으며, 한국에도 ‘한국 아르브뤼’라는 이름의 사단법인 단체가 있고, 의료법인 용인병원은 최근에 ‘아트 뮤지엄 벗이(The Versi)’라는 아르브뤼 미술관을 세웠다. 이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작품이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사실은 제도 밖에 있는 이들도 미술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 사회적 약자에 머물러 있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존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