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mask)라는 단어는 라틴어 이전의 토속어인 마스카로(maskaro)에서 유래했다. 원시인들이 동물을 사냥할 때 변장용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와선 유행성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착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로 두루 쓰인다. 평화적인 시위에 등장하는 ‘X’자 표시를 한 침묵의 마스크도 그중 하나다. 또 말을 아끼면서 소신을 굽히지 말라는 취지로 마스크를 내세우기도 한다. 1인 시위자가 예외 없이 쓰는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감추는 데 마스크가 ‘단골소재’라면 복면(覆面)은 ‘특수소재’다. 얼굴 전부 또는 일부를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 마스크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도 더 부정적이다. 특정 인물과 사물 등을 상징화해 나타낸 가면과 의미가 크게 달라서다. 특히 ‘복면강도’처럼 대개 범죄를 저지르면서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 혹은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지 못할 때 사용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얼굴을 가리고 신분을 감춘 채 하고픈 일이란 것이 대부분 불법이거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다면 굳이 마스크와 복면의 그늘 뒤에 숨을 이유가 없는데도 이들 두 ‘페이스오프’는 시위현장에 예외 없이 나타난다. 시위의 정당성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데도 말이다.
선진 각 나라에서는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이 1985년 처음으로 집회에서 복면을 쓰는 사람들을 형사처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2009년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하면서 복면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리령을 발표했다. 위반할 경우 적지 않은 금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밖에도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도 비슷한 법을 시행중이다.
시위가 다반사인 우리나라도 한때 유사한 법제정을 추진한 적이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시절이다. 그러나 ‘복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인권위의 권고로 무산됐다. 새누리당이 최근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얼굴 없는 시위’를 막을 입법, 이번에는 이뤄질까?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