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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이맘쯤의 풍경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느라 바쁘다. 태양은 갈수록 짧아지고 거리의 나무는 옷을 다 벗고 빈 가지만 남긴 채 여름내 끌어올렸던 수액을 뿌리로 당기는지 가지들이 느슨하다.

사람들은 서둘러 겨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비온 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음이 부쩍 바빠졌다. 거리에 나서면 골목이나 식당가에 김장을 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노랗게 속이 찬 배추를 갈라 소금을 뿌려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모습이 정겹다.

김장은 겨울 식량의 반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 어릴 때 김장은 마을의 큰 행사이기도 했다. 한 집이 김장을 시작하면 릴레이식으로 김장을 했다. 배추를 절였던 소금물을 받아가 다시 배추를 절이고 또 다음 사람이 김장을 시작하는 방법으로 마을 아낙네들이 김장 품앗이를 했고 김장을 거들고 오는 날에 어머니 손에 김치가 들려 있곤 했다.

우리 집 김장은 엄청났다. 식구도 많았지만 김치 양도 많았다. 항아리며 다라이 그것도 모자라 소죽솥까지 배추를 절일만한 그릇엔 배추가 담겨졌고 어머니는 밤잠을 설치며 절여지는 배추를 뒤적이며 배추가 골고루 절여지도록 도왔다.

집안에 수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다라이에 김치를 이고 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가는 행렬이 장관이었다. 동네 아낙들 대부분이 동참했다. 꽁꽁 언 도랑물을 망치로 깨고 김치를 흔들어 씻으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꺼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간간이 한숨이 몰아치기도 하면서 꽁꽁 언 손을 도랑 옆에 피워온 장작불에 녹이기도 했다.

배추를 씻는 동안 아버지는 이웃 분들과 함께 구덩이를 파서 김치 항아리를 묻었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움막을 만드셨다. 아버지는 비린 것을 좋아해서 아버지 김치엔 갈치며 동태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었고 양념도 듬뿍했다. 그것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아버지 전용 김치 독이어서 누구도 아버지 김치에 눈독을 들이거나 꺼내먹지 않았다.

열 개도 넘은 항아리의 김치를 가지고 겨우내 콩나물국을 끓이고 고구마며 호박을 쪄서 김치를 척척 걸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김치 한 동이 헐어야 얼마 못가 바닥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니 김장이 겨울 식량 반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어제 김장을 했다. 심은 배추가 많이 남을 것 같아 여기저기 배추 준다고 소문을 냈는데 막상 배추통을 쪼개보니 속이 많이 상해 있다. 짓무른 것이며 무공해로 키운다고 소독을 하지 않아 벌레가 파먹고 또 가을 가뭄으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추 속살만 도려내고 보니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배추를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에게 보내다보니 정작 우리가 할 양은 조금 적은 듯해 김치 사이사이 무를 쭉쭉 삐져 넣으니 오히려 맛깔스럽다.

무 몇 개는 땅에 묻고 김치는 김치냉장고에 가득 채웠다. 친정어머니, 혼자 사시는 큰 어머니 그리고 이사 준비로 김장 할 시간이 없다는 동생네 한 통씩 따로 준비해놓고 알타리 김치, 갓 김치, 조선배추 김치 등 골고루 채워놓고 보니 흐뭇하다. 올 겨울은 끄떡없이 보낼 것 같은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예전처럼 이웃과 함께 축제 분위기는 아니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큰 손으로 듬성듬성 속을 넣는 큰 아이와 더디지만 정성을 다하는 작은 아이와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남편 덕분에 맛있는 김장을 했다. 이 배추가 맛깔나게 숙성되는 것처럼 가족의 행복지수도 한결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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