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은 술을 무척 즐겼다. 그의 이름 앞엔 항상 주성(酒聖)이란 별호가 붙어 다닐 정도였다. 또 낙주가(樂酒家)답게 술꾼의 급을 18단계로 분류한 뒤 주석을 달기도 했다.
잘 먹지 않으면 9급 부주(不酒), 마시는 것을 겁내면 8급 외주(畏酒), 마시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면 7급 민주(憫酒), 혼자 숨어서 마시면 6급 은주(隱酒), 잇속 있을 때만 한 잔 사면 5급 상주(商酒), 여자 때문에 마시면 4급 색주(色酒), 잠을 청하려 마시면 3급 수주(睡酒)라 했다.
또 술의 참맛을 알기 시작하면 1단 애주(愛酒) 혹은 주도(酒徒), 술의 참맛에 반하면 2단 기주(嗜酒) 또는 주객(酒客), 알고 즐기며 마시면 3단 탐주(耽酒) 혹은 주호(酒豪), 술에 미치면 4단 폭주(暴酒) 혹은 주광(酒狂), 그리고 주도 삼매경에 빠지면 5단 장주(長酒) 혹은 주선(酒仙), 좋은 술을 아껴 혼자 음미하면 6단 석주(惜酒) 혹은 주현(酒賢), 술과 함께 유유자적하면 7단 낙주(樂酒) 또는 주성(酒聖), 술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마실 수 없어 남이 마시는 것을 관조만 하면 8단 관주(觀酒) 혹은 주종(酒宗), 술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면 9단 폐주(廢酒) 혹은 주신(酒神)이라고 부른다나. 물론 시인의 사견이고 바둑에 빗댄 표현이지만 풀이가 감칠맛 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적정 음주량은 얼마나 될까. 지난 5월 대한가정의학회 알코올연구회는 ‘1주일에 소주 2병 이하’라는 수치를 내놨다. 엊그제 서울대 교수팀은 이 같은 소주를 하루에 서너 잔 이내로 마시면 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하루에 소주 한 잔을 마시면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허혈성 뇌졸중 예방 효과가 62% 높았고 두 잔은 55%, 서너 잔은 46%로 점점 낮아졌지만 최대 다섯 잔까지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부터 소량의 음주가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왔지만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소주와 뇌졸중 위험도 간 관계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주당(酒黨)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