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움직이다
/성석제
밤중 부엌에서 물을 마신다
무엇인가 날카로운 끝을 긁어대는 게 있어
벌레인가, 들여다보니
소리내는 게 어디 나뿐인가, 라는 듯이
냉장고도 소리내기 시작한 게 오래인데
잊고 살아왔다 이젠 그 소리도 오래되어
음률을 배웠는지
노래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오래 흐른 물이 도통하여 때로 말씀으로 들리듯이
소리낼 수 있는 건 이것뿐은 아니다
구석을 더듬거릴 벌레들의 더듬이
잠정적으로 목이 막힌 수도꼭지
캄캄한 통 안의 가스
정수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형광등은 일분에 수천번씩 깜박인다 하고
잠든 아이의 입술은 예언을 머금고 있고
지하를 흐르는 물방울의 합창
지붕 위의 비행체
성층권에 부딪쳐 부려지는 전파와 통역사 라디오
우주에서 별의 죽음을 알리는 빛이 날아오고
탄생의 중얼거림, 파동의 띠에는 고요도
불순물처럼 섞여있을 테니
그들끼리의 신호는 얼마나 될까
물을 마신다. 귀가 자란다.
또 무엇인가 소리없이 공기를 휘젓는다.
시인의 입담은 세상이 안다. 시보다는 소설가로 더 알려진 작가와 인연은 깊다 문창시절 최수철 소설가와 성석제 소설가와 밤 깊은 술잔을 오고가며 여관이 없던지라 필자의 자취방에서 아침을 보냈다. 두런두런 이야기 속, 삶과 세상을 이야기했었다. 침묵한다는 것은 개그화된 언어와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광고와 같은 가짜 문화, 가짜문명에 대항할 용기가 없어서라고 말해도 된다. 성찰도 없이 무책임하게 세월을 사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시간이었다고, 사소함을 지키는 데도 위태로움을 느끼는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정말 지킬 수 없을 때 다시 열에 들떠도 좋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박병두 시인·수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