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는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얼마나 절박하고 참혹했는지 보여주는 한 모자(母子)가 발견됐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구급대원이 피투성이가 된 여성의 시체 아래서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를 구조했다고 한다.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 몸을 날려 자신의 아이를 지킨 것이다.
예부터 위대한 모정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았다.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네 부모님들은 그렇게 우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효(孝)’에 대해 논하는 게 마치 촌스러운 일인 양 여겨지곤 한다. 전통적인 효의 개념이 단순히 흔들리는 것뿐만 아니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효행 대행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자녀를 대신해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들을 찾아가 장을 봐주거나 청소나 세탁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들이 내거는 슬로건은 ‘평생 가족 대신 당신을 도와드립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집을 방문해 각종 생활을 챙겨주고 몸이 불편하면 병원에도 동행한다. 심지어 사망 후에도 매장 절차까지 대행한다. 그걸 보며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효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며 도덕적 근간이었다. 따라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기본적 원칙이며 사회의 규범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유교적 도덕규범이 살아있는 사회에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아주 기본적인 도리다. 요즘 인륜을 파괴하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 세태는 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풍토가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자녀양육과 교육에 전력투구하느라 자신의 노후 대비를 잘 하지 못한 우리 노인들은 이제 경제적 궁핍과 외로움, 허탈함에 고통 받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로 높으며 경제적 빈곤도 제일 심하다. 또한 노부모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 사례 등은 가족 내의 문제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구의 근대 사상이 유입되면서 우리의 전통윤리는 급속한 속도로 그 가치가 전도되는 현상을 빗었다. 물론 서구의 합리주의와 개인주의가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효’ 역시도 합리의 영역에서 재단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고루한 이야기지만, ‘효(孝)’라는 한자는 나이 든 사람을 업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어린 우리를 업을 때는 조금도 힘든 마음이 없었을 텐데, 우리는 왜 부모님께 전화 한 통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효는 사랑의 마음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또, 마음만으로 효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비로소 실천을 했을 때만 그 빛을 발한다. 그리고 군포시 의회는 그 실천에 앞장서고자 계획하고 있다. 젊은 시절 자신을 희생하며 지금은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어르신들을 업어드리는 마음으로, 노인 복지의 사회적 중요성과 가치를 정책에 잘 반영하기 위한 ‘효행장려’ 조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아름다운 전통문화유산인 효를 우리 시 차원에서 장려함으로써 저 출산·고령화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효 문화를 정착하고자한다.
‘효’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가치 체계 확립과 윤리의식 재정립을 통해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우리가 ‘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참 다양하다. 전화 한통을 할 수 도 있고, 잠시 찾아 뵐 수도 있으며, 사랑한다고 따듯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작은 행동과 마음들이 쌓여서 이번 겨울이 조금 더 따듯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