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賻儀
/조성국
잘 익은 복숭앗빛같이 뺨 붉던
새침데기 고 계집애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속에 들어와선
한 번도 빠져나간 적이 없는
고 계집애, 아비가 돌아가셨다
위친계모임에서나 잠깐 엿들은 풋정의 얼굴이 떠오르자
조문 가는 길이 설레었다
몇 십 년만큼의 애틋함이 콱 밀려와서는
영좌의 고인에게 절 올리면서도
힐끗힐끗 곁눈질로 훔쳐보던
일테면 내 꿍꿍이속을 알아차렸다는 듯
외동딸이던 그녀 대신 상주가 되어
나와 맞절한 남편이 피식 웃었다
신행 왔던 그의 발바닥을 매달아서
유달리도 직싸게 두들겨 팼던 것이
잠시 기억나서 덩달아 나도 피식 웃고
또 그걸 본 여자, 호야등 켠 곡을 잠시 멈추더니
은근슬쩍 뺨이 한층 붉어져 부리나케 모습을 감추자
상청 차일 속 어디선가 화투패 돌리다말고
누런 뻐드렁니 들어낸 듯
키들거리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참지 못하고 들려왔다
린 시절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련하고도 애틋한 추억으로 맺혀 있다. 이룰 수 없어서 그 사랑은 더욱 아프고 아름답다. 그러나 ‘몇 십 년’ 만에, 그것도 ‘새침데기 고 계집애’ 아비의 ‘영좌’ 앞에서 마주친 해후는 그러한 아픔이나 회한 대신 오히려 웃음과 해학이 넘친다. 이것이 아픔이나 슬픔을 극복하는 치유의 방식이다. 또한 이 풍경이야말로 저 진도의 ‘다시래기’처럼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망자에 대한 진정한 예의이다. ‘새침데기 고 계집애’는 화자의 마음속에서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