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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어수문(魚水門)-上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門)을 꼽으라 하면 많은 사람은 당연히 어수문(魚水門)을 말할 것이다. 이 문은 창덕궁의 후원 부용지의 북쪽 언덕 위에 정조가 만든 주합루가 있는데 이 건물의 정문이다. 기둥이 2개로 사찰의 일주문 같은 형식이며 폭은 8자이다. 지붕은 우진각으로 용마루 양쪽에는 용두가 설치되어 있다. 공포(?包)는 다포(多包)이며 세로로 쓴 ‘魚水門’ 현액이 중앙에 걸려있다.

어수문의 어원은 수어지교(水魚之交)에서 물과 물고기의 사귐의 뜻으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므로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수어지교의 유래로는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너무 아끼고 친밀해지는 것을 보고 관우와 장비가 불평하자 유비가 이들을 불러 “나에게 제갈공명이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이다(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라고 하였다. 그 후 관우와 장비는 이를 이해하고 다시는 공명을 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어수(魚水)’란 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나오고 있어 우리역사에서도 ‘국왕과 신하들’의 표현을 ‘어수’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수문은 주합루의 5단의 화계 중 첫 단에 위치하며, 첫 단에는 7개의 계단이 있고 구름이 조각된 소맷돌(운각대우석)이 있다. 소맷돌은 보통 국왕이 사용하는 곳, 또는 사찰의 법당에만 설치되어 위계가 높은 장소임을 표시하기도 한다.

또 어수문의 양쪽으로 5자(150㎝) 떨어진 곳에 작은 문이 있는데, 협문은 신하들이 출입하고 어수문은 국왕이 출입하는 곳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3개의 문이 있는 것은 사묘건축이나 국왕의 공식적인 업무에서 나타나는 문의 형식이다.

주합루는 영조의 어제각(御製閣)으로 사묘건축(祠廟建築)에 속하기에 정문(正門)인 어수문을 삼문(三門)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문은 3개의 문이 연접되어 있고, 지붕형식에 따라 솟을삼문과 평삼문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어수문은 기존형식에서 바라보면 솟을삼문에 속한다.

삼문으로서 어수문은 3개 문이 각각 분리된 아주 특이한 형태라 볼 수 있다.

사묘건축에서는 일반적으로 내·외삼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외삼문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외부 문의 흔적으로 ‘규장각도’에 의하면 지금은 없지만 부용지의 정문인 선춘문(宣春門)이 있다. 선춘문은 영화당과 연결된 담장에 위치하며 3문이 아닌 하나의 문으로 되어 있어 내삼문인 어수문과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않는다. 어쩌면 어수문은 사묘건축의 삼문이 아닐 수도 있으며, 주합루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시작점이 부용지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인지도 모른다.

등용문은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의 주해(註解)에서는 ‘황하 상류 용문계곡에 폭포가 있는데 그 밑에는 물고기가 많이 모이나 이곳을 오르지 못하며, 만일 오르게 되면 용이 된다.’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에 서는 일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고 있다. 부용지의 입구에 있는 영화당(暎花堂) 마당은 과거시험을 치르는 장소로 사용하였기에, 과거 급제자가 어수문을 통해 규장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여 등용문이라 하고, 또 부용지의 석축에 물고기 조각과 어수문 판문의 윗부분에 청룡과 황룡이 조각된 것도 등용문의 의미라고 해석하는 것이 현재는 일반화되어 있다.

이처럼 어수문을 등용문의 의미로 사용했다면 불교에서 승려들이 계(戒)를 받는 장소를 신성한 곳을 선정하여 계단(戒壇)을 만들어 식장으로 사용하는 의미처럼, 어수문과 화계도 과거급제자들이 관리로서 지켜야할 계를 받는 곳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정도 해 본다.

하지만 어수문이 등용문이라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어수문은 국왕만 출입하고, 신하들은 옆의 작은 문을 이용하게 된다. 만일 신하가 어수문을 이용할 경우 임금이 되려는 의도가 있다 하여 역모죄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수문은 국왕을 제외한 사람은 출입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때문에 어수문을 등용문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수문의 의미를 등용문과 연관하여 해석하기보다는 수어지교에서 나온 뜻으로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왕과 현명한 신하들의 만남’으로 해석해야 하고, 또 정조 이전 이곳은 왕의 정원이었지만 정조는 ‘신하들과 함께’ 하고자 이곳을 새로 조성하였기에 이를 어수의 의미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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