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모 일간지에 실린 외신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뉴질랜드에 사는 79세 된 할머니가 자신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가슴에 ‘쓰러져도 날 살리지 말라’는 문신을 새겼다고 해서다. 특히 앞으로 쓰러졌을 경우 문신을 보지 못할까봐 어깨 뒤편엔 다음과 같은 문구도 새겨 넣어 더욱 화제였다. ‘앞으로 뒤집어 보시오’.
같은 해 2월, 세브란스병원에선 뇌사상태에 빠진 환자 가족들이 병원 측에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중단을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같은 해 11월 존엄사 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였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다.
안락사는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존엄사란 후자를 가리킨다.
존엄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윤리적·종교적·법적·의학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 하는 나라도 몇 안 된다. 죽음의 여행지라 불리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정도다. 미국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에서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40개 주에서는 인공호흡기 제거 등의 소극적 형태로 허용하고 있다. 그 외 많은 나라에선 안락사를 도운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한다. ‘죽을 권리’보다는 ‘생명권’이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997년 보호자의 뜻에 따라 연명 치료를 중단했던 의료진이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바 있다.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엊그제(8일) 존엄사를 할 수 있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러 단서가 달리긴 했어도 이로써 환자의 ‘자기 결정’에 따라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처음 열린 셈이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유익이 됐으면 좋겠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