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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응·팔’을 보다가

 

“따르르릉, 따르르릉!”

“뭐라꼬? 서울로 올라오싯다꼬?”

앞이 캄캄한 진주엄마는 옆집으로 냅다 뛴다. 정봉이 어머니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빌려오고, 묵직한 쌀자루도 빌려오고, 몇 번을 들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빌려다 전시한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정엄마를 맞았다. 가난한 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가슴 밑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풋풋하고 훈훈한 이웃들의 정감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자취를 했어야 했다. 변변히 할 줄 아는 음식도 없고 겨우 밥이나 끓여먹는 정도였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식 대하듯 살갑게 챙겨주시며 한 식구처럼 대해주신 주인집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다.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명 유학을 한답시고 도시로 진학한 아이들. 그 숱한 자취생들을 이웃들이 피붙이처럼 챙기고 키워주신 것이다. 잘못을 하면 거침없이 혼을 내기도 하시면서 말이다. 물론 아이들도 이웃 어른들의 그 가르침을 거부하지 않고 마치 부모님 말씀인 듯 받아들였었는데 시대는 이웃한 사람들의 모습도 변화시키는 것 같다.

‘이웃사촌’이라는 개념도 시대와 더불어 희미해지는 듯 보인다. 요즘의 이웃들을 보면 나 아닌 이웃을 생각하고 함께 고민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맞벌이를 하고 부모보다 더 바쁜 자식들을 관리하고 초를 다투며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좇느라 허겁지겁 살아가는 모습. 돌이켜보면 80-90년대 그 때도 바쁘고 힘겹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왜 요즘이 더 바쁘고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그건 아마도 스스로의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을 경쟁으로 몰고 있는 현실의 환경에 함께 휩쓸려 덩달아 뛰고 있는 내 모습을 바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힘겹고 바쁜 중에도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했던 옛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웃이 없이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삭막한 세상이 또 있을까 싶다. 밥을 같이 먹고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공유하는 이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웃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마치 배경이 되는 풍경처럼 없으면 삭막하고 있어야 조화가 되는 그런 이웃으로 말이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올 때 환하게 불 켜진 아파트 출입구를 들락거리는 눈에 익은 이웃을 보며 나는 위안을 얻는다. 간혹 눈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전하고 그 이웃한 사람들의 흔적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휴일 아침은 또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른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마음 다치게 하지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외롭지 않은 그 거리만큼의 이웃. 그런 이웃은 드라마 속의 이웃처럼 철철 넘치는 사랑은 아니지만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배려가 함께 있기에 또 다른 풋풋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굳이 시간 내어 이웃한 집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좁은 엘리베이터에서라도 마주치면 환하게 인사 나눌 줄 아는 이웃. 궂은 일 마다않는 경비아저씨를 보고 반갑게 먼저 인사 건넬 줄 아는, 그런 마음 넉넉한 이웃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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