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한 단어가 된 지 한참이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더 어려운 청년들의 취업으로 인한 신조어도 참 많다. 그 중에서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단다. 이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인문학 계열의 현재 사정을 바로 보여주는 말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은 취업이 되지 않는, 그래서 돈벌이가 되지 않는 학문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인문학 계열의 학문적인 토대가 전혀 다른 과들을 통폐합 하는 문제로 몇 번 사회적 문제가 된 바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대학에서 인문학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라 할 정도로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흔히 고(故) 스티븐 잡스의 아이폰 신화가 기술과 인문학 융합의 성공사례라고 언급하며, 기업혁신의 새로운 동력으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례로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 부회장은 본인이 직접 인문학 강좌의 강사로 나서 청년들에게 ‘비슷비슷한 스펙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력, 강한 주관을 가진 차별화된 인재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 학과들이 취업전선에서는 각광받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앞 다투어 인문학적 인재를 원하는 온도 차이는 대체 무엇에서 기인하는 걸까?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교수였던 월터 카우프만은 저서 ‘인문학의 미래’에서 우리 시대의 인문학 풍토가 ‘자본주의에 포섭된 소프트(soft)한 교양 수준’임을 꼬집은 바 있다. 이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보자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아이폰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돈벌이 수단과 결합될 수 있는 아주 옅은 정도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거나, ‘문화센터 인문학’이라 일컫는 교양교육의 양상으로서의 관심에 그친다는 점이다.
인문학은 인류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인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신적인 풍요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가 부재한 관심은 인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제한하는 셈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몰인격의 차갑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치관의 부재와 정신의 빈곤에 목말라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는 수많은 인문학 강연에 구름 인파가 몰린다. 그들이 전부 창조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인문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아닐 거다. 아마도 대부분은 사람 중심의 인문학적 가치들을 공유하여 인문학이 제시하는 해답들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새로 잡으려고 할 것이다.
군포시에서는 책의 도시를 표방한 이후 책 읽는 도시의 성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부로 ‘밥이 되는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로 5년 동안 매월 정기적인 인문학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그 5년의 시간 동안 열린 수많은 강연들이 매 회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이처럼 ‘마음의 밥’이 고픈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왕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만큼, 이제는 탐스러워 보이는 과실의 겉껍질 핥기에 그치는 인문학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인문학의 본질이라는 과육을 섭취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가까운 도서관과 공연장에서 문학, 역사, 철학 삼시세끼 인문학 강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음을 살찌우고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도시와 국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인문학. 오늘 소중한 사람들과 인문학 한 끼 함께 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