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도어
/최세라
먼 곳으로부터 진입하는 열차는
스크린도어 위에 상영되는 한 롤의 필름이다
우에서 좌로 펼쳐지는 기적 소리가
좌에서 우로 펼쳐지는 기적 소리와 만나
결말이 다른 두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게 벽인 문과
모든 게 문인 벽
나는 내 곁에 나란히 서지 못해 당신의 손을 잡고
벽을 문처럼 열고 싶어라
이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영상이고 싶다
- 최세라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 시인동네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다보면 벽처럼 버티고 선 스크린도어와 마주한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지만 지하철이 진입해서 멈추면 벽은 문이 된다. 이쪽에 당도하는 열차와 저쪽에 당도했다가 출발하는 열차는 방향이 반대다. 각 열차가 풍경을 찍고 달려왔다면 두 열차는 완전히 반대의 영상을 펼칠 것이다. 같은 풍경이지만 결말은 다르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했는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다르게 펼쳐진다. 물론 내리는 곳이 어디인지도 종요하다. 약간의 차이로도 인생의 방향은 달라지는 것이므로 우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누구누구를 떠올리기도 하고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사내를 둘러보기도 한다. 스크린도어 앞에서 화자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현실에 ‘벽을 문처럼 열고 싶어’한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가장 아름다운 영상이고 싶다’고 소원한다.
/성향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