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세상 놓을 때는
/홍신선
긴 가뭄 끝 충주호 갈라 터진 밑바닥을
육괴(肉塊) 헐겁게 끌고 기어가다 서다
자진하는 한 가닥 실오라기 물처럼
늦가을 밤비 소리에 멀리 실리는 기적의 긴 한숨처럼
화선지에 번져 가다 멈추는 덜 갈린 물컹한 먹물처럼
이윽고 처럼과 처럼 틈새에서
생각 훅 불어 끄고
삶에 놀러 온 죽음의 웃음소리나
하릴없이 숨죽여 엿듣는 나처럼
가라.
늘 죽음만을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연을 당해서도 아니고 생활이 고달퍼서도 아니었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방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다 태어남과 죽음은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겸허히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어 죽음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연스럽고 편안한 만남일 것이다. 시인도 시작노트에서 말하고 있다. ‘나이 든 첫째 징조는 죽음과 자주 얼굴 익히기를 한다는 것.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가뭄 든 호수 갈라진 바닥을 보다가, 비 오는 밤 멀리 들리는 기적 소리를 듣다가, 붓글씨를 쓰다가 문득 죽음에 대한 생각과 마주한다. 그리곤 얼마나 의연하게 후생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혼자 묻곤 한다.’라고. /송소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