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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어수문(魚水門)- 下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을 그냥 아름다운 문(門)으로만 생각하였지, 주합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그동안 없었다. 어수당에 대해 전편에서는 주합루의 뒤편에 있었던 어수당과 관계를 살폈고 주합루와 다른 점들을 살펴봤다. 이번에도 계속하여 주합루와 다른 점을 고찰해보고 변형이 일어난 부분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전통건축은 목조가 주요구조로 특성상 60년을 주기로 건물을 해체하여 상(傷)한 부재들을 교체하여 보전해 왔다. 전면해체 보수를 할 때 기존의 형식을 이어가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창건기의 형태가 변하지 않고 유지 될 수 있는 건축부재에서는 석재를 꼽을 수 있겠다.

어수문에서 석재를 사용한 부분으로는 심방석(心枋石, 문설주를 받치는 초석)과 계단 및 소맷돌(偶石, 계단의 측면 난간석, 정전 및 법당의 중앙계단 등 위계가 높은 곳에 설치)이 있다. 그러나 심방석과 계단은 특별한 문양이 없어 시대성을 파악하기 힘들고 소맷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양식과 시대성 판단이 가능하여 어수문의 창건 시기를 추정할 자료가 된다.

소맷돌의 문양을 보면 불국사 등 삼국시대의 소맷돌 양식은 별도의 문양 없이 단순한 삼각형(사갑석)이었고, 고려시대는 사갑석이 곡면으로 변하나 벽면에는 별도의 문양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들어가면서 소맷돌에 조각하기 시작하지만 이것도 조선 중기 이후가 일반화된다고 볼 수 있다.

예외로 7C의 범어사, 통도사 대웅전에 있는 소맷돌에 문양이 있고 고려시대 법주사 대웅보전으로 이어지기는 하나 일부사찰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이 문양 조선 왕실의 소맷돌 문양에 이어지게 된다.

주합루와 어수문의 소맷돌 문양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주합루의 것은 전체에 걸쳐 조각되어 있고 어수문의 것은 중앙을 중심으로 1유형만 있다. 지대석 문양에서, 주합루는 4개 마디로 나누고 고석(鼓石, 북모양 돌)하부는 크게 만들어 총 5개의 마디가 있으며 여기에는 꽃이 조각되어 있는 반면, 어수문은 마름모꼴의 문양만 반복되고 있다. 고석 문양에서는 주합루는 안팎이 다른 문양이며 안은 3태극이고 밖은 꽃으로 되어 있고, 어수문은 안팎 모두 3태극으로 되어있다.

소맷돌 상부면 문양은 주합루와 어수문 모두 쌍사로 되어 있어 유일하게 같은 곳이다. 그리고 고석 상부면 문양에서는 어수문은 문양이 없는 반면 주합루는 고리를 계속 연결하여 쌍사보다 더 많은 공력을 들렸다.

소맷돌 조각으로 상호 간 비교를 해니, 전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나 상세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고석 상부면의 문양 차이에서 주합루는 상당한 공력이 들어갔고 어수문은 문양 자체를 생략하여 상반된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두 소맷돌의 창건 시기와 제작에 참여한 편수·기문(技門)도 같다고 볼 수 없으며, 다만 전체적 문맥은 비슷한 점이 많아 창건시기의 차이는 100년 이내로 볼 수 있겠다.

건물 양식상에서 주합루와 어수문의 관계를 전편에 이어 살펴본 결과, 두 건물이 한 영역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않아 한 쌍으로 보기가 어렵다.

이번에는 어수문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자, 어수문의 기록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규장각도(1776)’와 ‘동궐도(1830년 이전)’에 표현되어 비교할 수 있는데 시기는 60년 차이가 난다.

‘규장각도’에서는 지붕형식이 팔작이고, 용마루는 양성마루로 되어있고 끝에는 용두(龍頭)도 보인다. 하지만 ‘동궐도’에서는 지붕형식이 팔작에서 우진각으로, 용마루도 양성에서 암기와로 변한 모습이 발견된다.

‘동궐도’에서 나타난 모습은 지금의 어수문과 별반 다름이 없으며,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그림에서는 현액이 가로로 걸려있는데 현황은 세로로 걸려있는 점이다.

어수문에 대해 살펴본 결과 주합루의 정문이지만 상호 건축양식도 다르고 창건시기도 달라 주합루와 건축적 관계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또 어수문을 등용문이라 하고 있지만 국왕만이 사용하는 문이라 등용문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어수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국왕과 좋은 신하도 밀접한 관계다’란 뜻으로, 이곳을 신하와 함께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 창건주의 의지가 표현된 문이라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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