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이 작년에는 집 한 채 갖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빚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경제 전문기자의 2016년 경제 전망이다. 어느 정치인은 몇년 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빚 없는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바 있다. 그야말로 ‘빚’이 불행의 기준이 되었다.
경기도교육청은 도내 유·초·중·고 학생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자치 기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 4명 중 1명의 교육을 맡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이 부도 상태다. 2012년 4천38억 원이었던 부채가 불과 3년 만에 2조7천722억 원에 이르렀다. 이 나라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누리과정은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3~5세 어린이에게 적용하는 보육·교육 과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하게는 ‘국가 완전 책임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국민행복 10대 공약’에는 ‘약속2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으로 명시되어 있다. 유권자들은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책임에서 재원은 제외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지방자치가 책임지라고 강변하고 있다. 공약 포기에 다름 아니다. 최근 누리과정비 중 어린이집 해당 분을 자체 재원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자치단체가 있다고 알려졌다. 행정 일선에서 시민과 마주하고 있는 시정 책임자들의 고뇌가 읽힌다. 국가가 정책을 포기하자 지방자치가 그 과제를 떠맡겠다고 나선 셈이다. 중앙정부는 누리과정이 여전히 국가정책인지 아니면 지방자치의 과제로 넘길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와서 지방자치의 과제로 넘기려 해도 이 역시 구렁이 담 넘듯 할 것이 아니라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지방이 해결하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강요하겠다.’는 식으로 공약 이행과 국가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교육청의 가용 예산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 해당 분을 각각 일부 편성하자거나, 교육청이 유치원 분을 일부 편성하면 경기도가 어린이집 분을 일부 편성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리과정 예산의 확보는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 협상하거나 절충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로부터 받아내는 것이 공통의 과제다. 그 과제의 해결을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누리과정을 시도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억지에 불과하다. 아울러 그 억지에서 물러서면 답이 보인다. 우선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공약을 하고 사업을 추진했으면 예산도 함께 지원해야 한다. 예산 지원 없이 새로운 사업을 하라는 것은 다른 사업을 줄이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누리과정을 편성하려면 기존 유·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써야할 예산을 포기해야 한다. 유·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이러한 결정에 동의하겠는가? 정부의 대책 없는 강요가 국민 분열만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법령이 서로 충돌하는 위법성의 문제가 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3조는 ‘교육·학예에 관한 사항을 교육감이 관장’토록 하고 있으며, 어린이집은 시도지사가 설립허가, 재정지원, 운영 및 평가 등 전반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책임 소재가 다른 보육기관을 교육청이 책임지도록 강요함으로써 정부가 나서서 위법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보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누리과정비 지원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며 더 이상 미룰 일도 아니다. 그러나 유·초·중·고 학생의 교육을 희생시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을 키우게 될 것이 자명하다. 교육과 보육이 다른 사업이나 정책으로 인해 유보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는 한편, 제도를 정비하여 위법성을 해소하는 길만이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