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여자
/차성환
오지 않는다. 모레 온다고 했던 모래 여자,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건만 떠나자마자 사채업자가 들이닥쳐 잘라 버렸다.
모래 밥을 안쳐 놓고 오지에 가서 오지 않는 여자
오늘 밤도 내일 밤도 아닌 모레 온다고 한 여자
잘린 손가락에 대마초가 피고 냄새를 맡은 경찰이 철문을 두들긴다.
방구석에 놓인 관 뚜껑이 열리고 삼베옷을 입은 아버지가 튀어나온다.
아버지는 대마 잎을 염소처럼 뜯어 먹고 나는 염소젖을 쓰다듬으며 음마음마 소리내 운다.
모레에 오지 않을 것 같고 와도 안 될 것 같은 여자
귓가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도시는 황사로 가득한데 치맛자락을 붙잡은 내게
모레에 올게 모래를 흩뿌리며 사라진 여자
뻑뻑한 눈알을 긁어 대는 나를 두고 모레 온다며 떠난 여자
모래를 씹으며 모레를 세면 손가락들이 모래로 떨어지고
방 안에 나 대신 모래 한 푸대 부려 놓고 달아난 여자
대마 꽃처럼 푸슬푸슬한 붉은 입술로 도망간 모래, 모레, 모래 여자
때로는 문학사에서 작품론과 작가론이 거론될 때 그 어느 쪽으로 치우쳐서 불균형을 이룰 때가 있다. 작품은 괜찮은데 사람은 좀 그렇더라는 말도 있고 사람은 좋은 데 작품은 좀 그렇더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생각을 별로 안하고 살았는데 최근에 그것도 갓 등단했으나 작품과 태도가 좋아 큰 기대가 되는 시인이 생겼다. 차성환 시인이다. 나는 25년 동안 시인축구단 글발과 함께 해 왔다. 면면이 좋은 시인들과 함께 하니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동아리이고 떠날 수 없는 동아리다. 동아리에 지금 막 들어온 차성환 시인은 발군의 실력을 축구에서 발휘하지만 시인을 대하는 태도 시를 대하는 태도가 성실해서 저러한 젊은 시인이 많으면 곧 우리나라가 시인공화국이 될 거라는 기대까지 하게 된다. 그의 시 모래여자도 재미있고 성실하다. 모래는 원형이 부서져서 된,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소외된, 무가치한 것으로 시에 자리잡으나 모레란 미래의 시간과 맞물려 재미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작고 무가치한 모래에서 미래로 어떻게 점진적으로 자리잡아 가는지 보여준다. 모래 여자나 결국 모레 여자로 나타날 거라는 암시를 던져 준다. 말라 버석거리는 모래인 현실로부터 도피해간 것 같으나 현실의 희망이 되어 나타나리라 시는 말한다. 자잘한 시어들로 구성 되었으나 희망의 노래 척 하니 세상에 내놓은 차성환 시인의 솜씨가 대수롭지 않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