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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서향각 中

 

서향각은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 등 왕실의 연구도서관 단지를 조성하면서 여러 시설의 중 하나로 포쇄(종이류의 책을 햇빛에 말리거나 바람을 쐬는 일)를 주관하는 건물로 건립되었다. 당시 이곳에 많은 건물이 건축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이유로 인해 없어지고 주합루와 서향각만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 두 건물도 비공개 시설로 분류되어 인적이 닿지 않고 사진의 배경 장소로만 활용되고 있다.

‘책의 향기가 나는 곳’의 이름을 가진 서향각의 내력을 살펴보면, 창건 시기에는 왕실 관련 책들의 포쇄를 위한 건물로 건립되었지만 포쇄는 항상 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상시에는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규장각을 건립(1776년)한 후 정조는 자주 찾아와 규장각 각신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격려하였고 만나는 장소는 주로 서향각에서 이루어졌다. 그만큼 서향각이 편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장각의 역할이 커져 1781년 금호문의 근처로 이전하게 된다.

규장각이 이전한 후 조용해진 후원의 이곳은 왕실연구기관 용도보다는 포쇄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순조 3년(1803) 인정전의 화재 발생 시기에는 선원전의 어진을 이곳에 모시기도 하였고, 이후에는 선대왕과 관련하여 어제각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왕실의 권위가 축소되면서 서향각에 양잠소(養蠶所)가 설치되었고,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과도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비상 국민회의(非常國民會議)가 열리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1908년 ‘개정 제사제도 칙령’으로 인해 왕실의 제사(祭祀) 건물들을 한곳으로 모으면서 각기 제사건물에 봉안되었던 품목들도 이전되게 되고 기존의 건물에는 새로운 용도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주합루는 연회장으로, 서향각은 누에 사육과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소가 되었다.

서향각의 양잠소 공식적인 설치가 1911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909년에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쓴 ‘親蠶權民(친잠권민)’의 편액이 서향각에 걸려있어 양잠의 시행은 1908년 ‘제사제도’ 발표 직후로 추정된다.

양잠을 장려하는 일은 조선전기부터 주요업무로 인식되어 국가적 행사로 치러 왔다. 선잠단(先蠶壇, 양잠의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의 서릉(西陵)씨를 위한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왔으며, 지방에는 모범 양잠소를 두어 백성들에게 알리고, 궁궐에서는 왕후가 고관대작 부인들과 함께 직접 누에를 치는 행사를 주관하여 지도층의 여성들이 앞장서게끔 하였다.

1907년 정미 조약으로 권력이 일본에 넘어간 이후 왕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권력, 권위 및 군비 증강 등은 엄두도 못 내고, 경제적인 측면에 앞장섰을 것이다.

서향각에 대한 현대의 자료 중에서는 양잠소의 역할이 창건 시기부터 있었다는 이야기와 일제에 의해 양잠소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순정효황후가 쓴 ‘親蠶權民’의 편액 때문으로 오해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 서향각에 양잠소를 운영한 것은 왕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친잠권민’의 편액은 정면 퇴칸 복도에 걸려있고, 그 외부에는 ‘書香閣(서향각)’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는 정조 때의 명필로 유명한 조윤형(曺允亨, 1725~1799년)이 썼다.

서향각에 대한 자료 중 규장각에 보관된 ‘서향각 봉안총목(書香閣奉安總目)’이 있는데 책의 내용은 ‘기물배치와 소장품의 보관 모습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 19세기 서향각의 내부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작연대나 저자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본문에 ‘헌종어제집할부본(憲宗御製集割部本)’의 내용이 있어 철종 이후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서향각은 용도가 없이 빈 건물로 쓸쓸하게 서 있으나, 빈 건물로 있는 것은 공기 순환이 안 되어 건물이 빨리 쇠하기 마련이므로 언젠가는 활용을 할 것이다. ‘서향각 봉안총목’에 나오는 대로 재현하여 왕실어재각의 전시장으로 서향각을 활용한다면 높은 호응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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