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
/최세라
때로는 구름 아래 서 있고 가끔은 구름 없이 누웠다.
통이 점점 넓어지는 바지를 입는 날이 많았다.
인파 속에서 너를 찾듯이 까치발 섰다. 내일 질 꽃이 가장 아름다웠다.
바깥의 가식으로부터 안쪽의 가식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지만
볶은 콩과 날콩을 분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눕히면 눈동자가 흔들리는 인형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었다.
어제의 기분이 엉겨 붙을 땐 홑청 같은 나비 떼를 날리라고 배웠다.
아무에게도 그날의 행방에 대해 묻지 말라고 배웠다
오늘의 기분은 4그램
한 근을 맞추기 위해 고깃덩이에서 떼어낸 자투리 구름
- 웹진 ‘시인광장’ 2015년 8월호 발췌
클라우디는 사전적 의미로 ‘흐린, 구름이 잔뜩 낀, 탁한’이고 와인에서 부유물이 많을 때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시에서 너무 지나친 상상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던져 준다. 시를 어렵게 하고 객관성과 보편성을 얻기 어려워 버려진 시가 된다. 그러나 클라우디 시는 상상력이 발랄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큼함을 느끼게 한다. 전혀 흐리거나 혼탁하지 않아 클라우디 대한 반어법 같아 더 큰 매력을 가진 시를 시인은 보여준다. 까치발이라는 상징을 내세워 굴복하지 않는 의지도 보여준다. 볶은 콩과 날콩을 통해서 이제는 이념의 대립이 사라졌으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갈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짧고 깔끔하고 내용마저 알차다. 오늘의 기분은 4그램, 한 근을 맞추기 위해 고깃덩이에서 떼어낸 자투리 구름이라는 시로 상상의 극치를 이룬다. 빈틈이 없는 시다. 전혀 클라우디 하지 않은 좋은 시다. 우보처럼 성실한 발걸음으로 시의 세계로 걸어가는 시인은 존경스럽다. 감동 있는 시를 보여줘서 고맙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