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이영춘
남편은 부엌에서 마늘을 찧고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베란다에선 앵무새가 제 짝을 부르는지 죽어라 울어 대고
고요로운 햇살 두 볼을 만지작거리며
살곰살곰 거실로 발을 옮기는데
발길에 묻어오는 아침나절의 햇살 풍경
풍경 속에서 칼도마 두드리는 소리
참, 맛있다.
- ‘춘천사람들’ 제9호에서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라는 시집을 2015년에 열네 번째 시집으로 내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라는 시집을 나에게 한 번 부치고 한 번 더 부쳐주셨다. 시집을 부치시고도 부쳤는지 안 부쳤는지 몰라 부치셨겠지만 나는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 가라는 거듭된 촉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때라는 시를 보면 늘 큰누나 같은 시인이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신들의 발자국을 살곰살곰 따라가는 작금의 시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섬세한 일상 속에서 꽃잎보다 더 여린 감성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 하나 놓치지 않는 알뜰함으로 사신다. 소리란 것은 사물이 살아있을 때 내는 소리다. 칼도 칼도마도 살아있으므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이 맞아 내는 소리이다. 책을 읽는 시간, 아침나절의 햇살이란 정적인 것과 살아있으므로 소리는 내는 동적이 것이 어울려 만든 풍경은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조화롭고 알뜰하다. 지금껏 짝을 이루어온 시인 부부가 연출해 내는 광경은 삶의 걸작이다. 시로 보여주는 풍경이 혀끝에 단침을 돌게 한다. 시인이 시 속의 삶을 맛있다 했지만 나에게는 이 시가 참 맛있다. 잘 됐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