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9 (금)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철쭉 길들이기

 

올해도 2월은 그렇게 왔다. 수줍은 얼굴로 와 말없이 눈알만 굴리다 가버리는 생뚱맞은 아이처럼. 해마다 그 2월이 오면 나는 늘 꽃집에 들러 프리지아를 샀다. 사무실 가득 프리지아 향기가 번지면 비로소 내 마음도 봄 맞을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 옛날 커다란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 이라는 입춘첩이라도 붙인 듯 마음까지 따뜻해졌었다. 올해는 특별히 봄맞이 친구를 하나 더 집으로 데려왔다. 프리지아를 사러간 꽃집에서 막 몸단장을 끝낸 매혹적인 철쭉에 반해 그만 철쭉 한 그루도 함께 사왔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라 아직은 추위에 약합니다.”라는 꽃집 주인의 말에 철쭉 화분을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밑에 놓아두고 애지중지 들여다보았다. 아직은 쌀쌀한 베란다로 내어놓기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빨리 꽃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5일도 채 되지 않아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철쭉. 생글생글 웃으며 피고 있는 그 철쭉의 여린 분홍 꽃잎을 보고 있노라니 예쁘기도 하면서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천천히 절기에 맞게 피어야 할 꽃을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비닐하우스에서 웃자라게 하여 꽃을 피우고 잘 다듬어진 상품이 되어 팔려나가야 하다니. 마치 사람들 속에서 억지성장을 하고 있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 같아 더 마음이 쓰였다.

오랜만에 만난 김군은 따스한 부모님의 보호아래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학교와 학원을 넘나들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여 도달한 그 목적지에 자기 색깔이 없었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자기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30대의 그 청년. 그는 온전한 자기를 찾기 위해, 자립할 수 있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긴 여행을 다녀올 거라며 떠났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그가 잃어버린 건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떤 길을 가야할지 갈등할 틈도 없이 부모님이 시기적절하게 들이댄 잣대에 맞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진 길로 안내되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덕분에, 나약하고 고운 온실 속 화분이 되어 값지게 팔려나갈 상품으로 말이다.

2년 전이었던가, 죽었다고 내어 놓은 국화화분이 이듬해 가을이 되자 제 스스로 빨갛게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실내에서는 분명 말라죽었었는데 아파트 화단으로 버린다고 내어놓은 화분에서 스스로 살아나다니. 자연이 주는 햇볕과 바람, 비, 추위가 모두 허투루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꽃은 자연 속에서 제 스스로 피고 질 때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물론 그 자연의 일부인 사람 또한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비, 바람, 추위를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을 다 갖고 있는 그 꽃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사람 속에 섞여 자기 색깔을 드러낼 줄 아는 나름의 방법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어른인 우리가 그저 그 방법 다 잃어버리지 않게 온실 속에 너무 오래 담아두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추위 완연히 꺾이는 3월이면 철쭉을 베란다로 내어놓아야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스스로 익혀 내년엔 저 스스로 자연스럽게 절기에 맞는 꽃 피울 수 있도록 말이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