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입었던 옷을 정리한다. 그리 길지 않았던 겨울동안 입었던 옷들이 뭐가 그리 많은지 옷장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세탁소에 맡길 것은 맡기고 물세탁이 가능한 옷은 세탁기에 그리고 한두 번 입어 빨기도 그렇고 그냥 보관하기도 찜찜한 것들은 울 세제를 풀어 조물조물해서 널어 말린다.
햇살과 바람이 좋아 빨래도 잘 마르겠다. 요즘은 먼지 상태가 나쁜 날이 많아서 창문을 활짝 열기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햇살좋은 날 골라 집안 환기도 시키고 빨래도 말린다. 예전 같으면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이 있어 바삭바삭하게 말릴 수 있어서 좋았다. 잘 마른 옷들을 마루 끝에 앉아 개고 있으면 심심해진 오후에 햇살이 지분대며 한지 문창살을 넘나들곤 했다.
지금은 세탁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빨래하는 부담과 시간 그리고 힘겨움도 줄었지만 예전엔 빨래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가족이 많다보니 빨랫감도 많았고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개울물을 빨래방망이로 깨고서 빨래를 하다보면 손이 얼마나 시린지 나중에는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울타리에 걸치면 빳빳하게 얼면서 고드름이 매달리곤 했다. 그런 세탁물을 태양이 녹이고 바람이 얼리면서 며칠이 지나다보면 말라 있곤 했다. 겨울엔 빨래와 건조가 쉽지 않다보니 소매 깃은 꼬질꼬질하고 무릎은 반질반질하도록 입곤 했다.
학교 갔다 오면 동생들 기저귀 빠는 일이 일과 중 하나 이기도 했다. 흐르는 물에 비누칠하고 방망이로 팡팡 때려 빨면 기저귀에 묻은 오물자국이 속이 개운해지도록 빨리곤 했다. 특히 이불 빨래를 하는 날은 개울가에 솥을 걸고 아예 호청을 삶아가며 빨았다.
겨우내 덮어 누렇던 호청이 삶고 두드리는 동안 묵은 때를 벗고 하얗게 빛나는 것이 좋았다. 물기가 걷히면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하여 다시 호청을 볕에 바싹 말려 씌우면 목화솜 이불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것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와 큰 언니가 마주 앉아 밤이 늦도록 다듬이질을 했고 다듬이질이 끝난 이불호청은 반질반질 윤기가 돌았다. 다듬이질에서 룰이 있어 리듬을 맞추듯 서로가 어긋나지 않게 균형을 이뤄 두드렸고 아버지는 문간방에서 새끼를 꼬며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셨다.
겨울옷을 정리하다 유년의 한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아득히 먼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다. 지금은 주거환경이 좋아지고 대부분 침대생활을 하다 보니 이불호청을 빠는 일도 거의 없고 세탁도 용이한 재질의 좋은 침구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세탁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었다. 세탁기도 갈수록 성능이 좋아져 각기 옷감의 재질에 맞는 기능을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하고 손쉽다. 세탁에서 건조까지 한 번에 해결하니 이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의 큰 혜택이다. 잘 마른 빨래를 반듯하게 개켜 아이들 옷장에 넣어주며 마음으로 당부 한다. 살면서 찌들거나 벗어던지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빨래를 하듯 시원하게 흘려보내고 산뜻하고 뽀송뽀송하게 하루를 살아내자.
향기 좋은 꽃과 나무에 벌과 나비가 들 듯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어 말하지 않아도 따르는 사람이 있고 단정한 옷매무새와 격에 맞는 옷차림이 그 사람의 첫 인상을 좌우하게 되는 만큼 늘 단정하고 품위 있게, 누구에게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옷장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