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3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는 놀랍다. 후보자와 정당은 물론, 유권자도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거에서 이변은 없다. 다만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 선거 역시 유권자의 민심을 그대로 반영했다. 냉철한 민심은 권력에 취한 독선에 분노했고 지역주의와 기득권에 기댄 무사안일을 질타했다.
투표를 끝낸 6시, 출구조사 결과 발표는 시청자를 전율케 했다. 이긴 자든 진 자든 후보자는 단 1초만에 넋을 놓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지켜본 개표 방송은 무릎을 탁 치게 했다. 태양의 후예보다 드라마틱했다. 국민의 침묵은 징벌의 무게를 더하는 숙성이고 기다림이었다. 유권자의 분노는 강렬했고 메시지는 예리했다. 당선자가 축배를 아껴야 하는 이유다. 왜 분노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20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잔을 내려놓고 유권자의 눈과 마주해야 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고백하건데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정당의 공약을 살펴봤다. 교육정책이 궁금해서다. 고교 무상교육, 사교육비 경감,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등 대충 훑어봐도 공교육 강화는 공통된 약속이다. 몇 번의 지난 선거에 단골로 등장해 눈에 익은 공약도 눈에 띈다. 무성의, 공허함이 머리를 맴돌지만 대부분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선거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단지 이번 선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성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다.
교육재정 위기 해소는 20대 국회의 우선 과제다. 경기도의 한 도시 선거구 당선자를 만났다.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젊은 유권자는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입법 추진을 약속했다.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한 지난 대선의 약속을 이제라도 지켜 별도의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법에 정한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을 담당하는 교육청이 책임지라는 강요도 중단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 비율 상향도 시급하다. 내국세 대비 25.27%로 조정하는 법안을 개원과 동시에 제출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당면한 위기 해소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비로소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야권이 ‘국정교과서 폐기 결의안 추진’에 뜻을 모았지만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유체 이탈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를 거스른 강행은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를 성나게 한 작지 않은 원인임이 틀림없다. 퇴행을 불사한 역주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선거 결과는 오히려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유권자는 자율과 자치의 시대에 역행하는 독주를 심판했다. 일각에서 주장해 온 교육감직선제 폐지는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 지방자치가 정착되면서 주민의 삶의 질은 나아지고 각 지역은 실정에 맞는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교육자치는 지방자치의 양대 축의 하나다. 교육이 다양성을 잃으면 규격화된 인간을 생산하는 제조업으로 전락한다. 학교는 공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한다. 교육자치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교육자치가 더 튼튼히 뿌리를 내리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에 따르는 길이다.
20대 국회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정치가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선거에 임한 후보자와 정치권은 교육정책을 충실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뒤늦게 책망할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다. 의지를 요구할 뿐이다. 그 출발은 교육재정 위기 해결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에 있다. 더 나아가 교육자치를 공고화해야 한다. 20대 국회가 ‘문제는 교육이야’라고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까? 4년 후, 성난 유권자가 아니라 웃는 유권자를 만나는 정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