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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갈등의 끝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봄 햇볕은 자외선이 강해서 딸을 아끼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며느리는 또 사돈의 딸이 아닌가? 사돈이 “왜 봄볕에 내 딸을 내보내는가?”라고 항의하면 뭐라고 설명할까? 명절에 며느리가 친정 간다고 눈치를 주면서, 딸은 왜 아직 안 오나 기다리는 시어머니 이야기도 같다. 요즘은 고부간의 갈등뿐 아니라 친가보다 처가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장모와 사위간의 갈등도 심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 간의 갈등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층간 소음이나 층간 흡연 문제 등 이웃 간의 갈등은 살인사건도 만들어 낸다. 혐오시설의 설치를 둘러싼 지자체 간의 갈등, 청년실업과 조기퇴직 문제 등 세대 간의 갈등, 노동유연성을 주장하는 사용자측과 최소한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동자 간의 노사갈등, 정치권의 사사건건 대립 등 도처에 갈등이 만연해 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처럼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 하나만 실천한다면 다 해결될 수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는 말인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책망의 말이다. 원래는 맹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도를 실천하는 안회(顔回), 하우(夏禹), 후직(后稷) 등의 성현들을 예를 들면서 이들은 입장이 바뀌어도 그랬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성현이 아니라서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입장이 바뀌면 똑같이 생각하게 될 것이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민주화투쟁의 시대에서 민주화된 시대로

이러한 사회적 갈등의 뿌리는 매우 깊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북분단과 6·25를 겪었다. 전쟁 때는 우리 편과 상대편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편이 정말 옳은지 따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삶과 죽음이 눈앞에 있고 절대로 동화될 수 없는 이질적 집단과 싸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는 민주화 투쟁의 시대였다. 편가르기가 계속되었고 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하였다. 타협은 변절이요, 변절은 곧 이념적 사망을 의미하였다. 그런 극한적 대립은 역설적으로 집권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정권교체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결과가 되므로 좀 불편하더라도 현상유지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1987년 현행 헌법체제를 만들어 냈고, 이 헌법 하에서 몇 번의 정권교체를 경험하였다. 인물교체도 해 보았고, 집권진영을 바꾸는 여야 정권교체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 이해해야 할 당위성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투쟁의 시대에 존재했던 비타협적인 의식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타협과 양보는 나의 미래에 대한 배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원리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다수와 소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수가 되었을 때 탄압을 받기 싫으면 지금 다수일 때 소수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각 분야에서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 오늘이 세상 끝이 아니라 언제나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과도기라는 점을 잊지 말자. 타협은 일방적 양보가 아니다. 타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며,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배려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엉뚱한 결과가 된다. 예를 들어 짝사랑하는 처녀의 키스를 받고 싶다고 총각이 이 말대로 상대 처녀에게 일방적으로 키스하면 큰일 난다. 요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때문에 시끄럽다. 그걸 만든 사람들은 자신의 가습기에 그 살균제를 넣었을까? 음식점에서 주인과 종업원이 메뉴와 같은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면 믿을 만한 집이다. 사회가 있으면 크고 작은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쉽게 해소될 수도 없고, 완전히 없어질 수도 없다. 다만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대립은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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