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소가 발표한 ‘어린이 생활 실태 보고서’를 보면 초등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겨우 30분 미만이라고 한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75.6%의 부부가 하루에 한 시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대화를 전혀 하지 않거나 30분 미만인 부부는 30.9%에 달했다. 이처럼 대화가 원활하지 못한 부부의 경우 15년 이내에 이혼할 확률이 94%나 된다는 통계도 있어서 부부의 대화 부족은 그 심각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의 달을 맞아 많은 가정들이 가족과 선물을 나누고 여행을 하는 모습은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을 때는 ‘관계 맺기의 비밀-TAPE요법’을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TAPE요법’은 대화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인들을 위해 필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4단계의 대화법이다. 1단계는 ‘감사하기(Thank you)’이다. 상대방에게 감사를 표현함으로써 오해와 선입견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게 하는 단계이다. 2단계는 ‘용서 구하기(Apologize)’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표현하는 단계이다. 3단계는 ‘요청하기(Please)’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요청하는 단계이다. 4단계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Express)’이다. 거짓 없이 감정을 표현하되, 서운한 감정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친숙한 관계로 나아가는 단계이다.
실제로 ‘TAPE 요법’ 덕분에 관계를 회복한 많은 가족들이 있는데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첫 사례는 이 대화방법을 활용하여 이혼의 위기를 극복해 낸 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결혼 후 남편과 갈등을 겪으면서 마치 남편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2주 후에 혼자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선포했다. 아내는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남편으로부터 ‘내가 잘못했다’는 사과만큼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로부터 사과하라는 소리를 듣자 남편은 도리어 “네가 사과해야지”라며 화를 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렇게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아내가 부모성품대화학교에 참여했다. 그때 필자가 아내에게 권유한 것이 바로 ‘TAPE요법’이었다. 나는 4단계 순서대로 남편과 다시 이야기해 볼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계속 권했더니 용기를 냈다.
아내는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키 큰 당신과 이렇게 걸으면 내 마음이 든든해지고 좋아. 참 감사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이런 말 한 번도 안 했네. 정말 미안해.”
아내의 말에 남편은 당황했다.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사실 내가 당신한테 잘한 게 없잖아. 미안해.”
아내로서는 TAPE요법 중 ‘감사하기’와 ‘용서 구하기’까지 두 단계만 거쳤을 뿐인데 그토록 원한 남편의 사과를 받은 셈이었다. 그날 이후 부부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 부부는 지금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음 사례는 깨져 있던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된 경우이다. 이 가정의 경우도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관계가 깨져 있었다. 특히 첫째아이는 불안장애에다 틱 장애까지 있었다. 엄마가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양육했고, 아빠는 무관심했다. 엄마는 여러 상담기관을 찾아가 봤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필자가 진행하는 성품교육에 참여했다. 그리고 TAPE요법을 배우고 이를 적용하게 됐다.
엄마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고, 그동안 엄격하게 대한 것을 사과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요청했으며, 부드럽게 마음을 표현했다. 함께 교육을 받은 아빠도, 무관심했던 걸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표현했다. 그러자 관계가 회복되면서 첫째의 틱 장애도 개선됐다. 아이는 학업에 집중하게 되자 잘 웃고 밝게 변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행복한 대화의 습관을 키워보자. 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선물은 없을 것이다. 오늘 당장 시간을 내어 ‘미안하다’ ‘감사해’ 하고 먼저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