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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빨간색 영화 제목 같기도 한

빨간색 영화 제목 같기도 한

/손수진

나고 자란 섬 한번 벗어나보지 못한 사내가

큰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한 거라

젊은 며느리도 효도 한번 해볼 양으로

그럴싸한 한식집에 모셔 대접을 한 거라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밥상머리에

조개 같은 것이 붙었는데

누를 때마다

어디서 선녀 같은 여자가 나타나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거라



햐! 요것 봐라



사내는 흑심이 생긴 거라

며느리 몰래, 슬쩍 떼어 주머니에 넣고서는

하루 더 묵어가라는 손을 뿌리치고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 거라



내려오는 내내 속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그스름하고 납작한 그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불콰한 노을 속으로, 끄덕끄덕

묵지근한 몸을 흔들고 있는 거라

 

 

 

현대판 ‘선녀와 나무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는 읽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상야릇한 제목이 그렇고, 그 제목에 걸맞은 에피소드가 그렇고,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말투가 그렇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시이다. 섬 ‘사내’가 ‘서울 나들이’를 하며 벌어지는 서사 구조 자체가 어쩌면 우리시대의 슬픈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립과 단절의 상징인 ‘섬’과 문명의 한복판인 ‘도시’의 충돌이며,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며, ‘순수’와 ‘비순수’의 충돌이다. 그것을 어찌 사내의 무지와 착각으로 인한 해프닝이라고만 하겠는가.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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