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전경 10곳을 뽑아 시를 남겼는데 2경은 망춘정(望春亭)으로 망춘 문앵(望春聞鶯)을 지었다.
아지랑이 흰 나비는 화창한 봄을 희롱하는데(游絲粉蝶弄春晴)/ 푸른 나무 짙은 그늘에선 꾀꼬리가 종일 우누나(碧樹陰濃盡日鶯)/ 철새가 저 혼자 우는 것도 조화의 일부분이라(時鳥自鳴猶造化)/ 자연의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핌이 바로 성인의 마음이라오(仁天位育聖人情)
내용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봄의 전경과 즐거움을 읊고 정자의 이름도 ‘봄을 바란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망춘정은 봄과 관련된 장소로 볼 수 있다.
창덕궁의 후원 중 특히 이곳은 봄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 역대 국왕들이 즐겁게 찾는 곳으로 정조 또한 해마다 가까운 신하들과 그의 친지를 불러 꽃구경을 같이했다. 홍재전서를 보면 정조 19년(1795) 3월(음) 꽃구경에 참여한 인원이 98명으로 부용정에서 1차로 꽃구경과 뱃놀이를 한 후 모두 말을 타고 망춘정과 존덕정까지 이동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같이 꽃구경은 부용정을 최고로 꼽지만, 존덕정 부근도 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어 이곳은 봄을 위한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고 본다.
망춘정의 기록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은 ‘승정원일기’로 순조가 1811년 윤3월 14일 이곳을 방문한 내용이 있어 최소 이때까지는 존재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1820년 후반에 만들어진 ‘동궐도’에서는 망춘정의 모습이나 소실된 후 초석 등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 동궐도를 제작하기 훨씬 이전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망춘정의 소멸한 시기는 1820년대보다는 1810년대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상림십경 중 현재 관풍각, 천향각, 망춘정등 3곳은 남아있지 않지만, 광풍각은 ‘동궐도’ 건물에 명칭이 표기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으나 나머지 2곳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당시 자료인 ‘동궐도(1820년대 후반)’와 ‘궁궐지(宮闕志·헌종 연간(1834~1849)’로 제작시점이 최소 5년, 최대 25년 정도 차이가 있지만 두 자료를 통해 위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궁궐지’ 망춘전편에는 ‘존덕당 북쪽에 있다(지금은 없다), 증(增) 정조가 지은 망춘문맹 시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존덕정 근처는 맞지만, 당시에는 소멸되고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궐도’에서 그 위치를 추정해보면, 첫 번째 존덕정의 뒤편으로 네모형태의 연못과 반원형의 연못과 그 뒤에는 언덕과 숲이 있어 건물이 만일 이곳에 있었다면 연못에 걸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존덕정의 북동쪽에 3칸 건물(천향각으로 추정) 앞에 있는 ‘초석’을 망춘정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통명전이 1790년에 소실되어 복원되지 않은 채 초석만 남아있듯이 망춘정도 소실되지 얼마 되지 않아(20년 미만) 복원되지 않고 초석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망춘정의 위치가 이곳이 맞는다면 천향각과 연접해 있는데, 이를 따로 분리하여 십경에 올리는 것은 의구심이 남게 된다.
이같이 정확한 자료가 없어 망춘정의 위치를 추정하였을 뿐 확정할 수는 없다.
망춘정은 존덕정 근처에 위치하여 항상 존덕정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존덕정은 보기 드문 육각정이고 외부에 칸을 덧대고 이중 지붕을 구성하여 마치 2층 건물로 보인다. 이처럼 존덕정은 특별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망춘정과 달리 상림십경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정조가 사랑한 망춘정은 일찍이 소실되고 복원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자료와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복원의 가능성은 정조의 건물 중 가장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