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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6월에 생각나는 세 가지 기억

 

6월이 되면 떠오르는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있다. 손바닥을 펼치거나 주먹을 불끈 쥔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이 연사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칩니다아~~”로 대미(?)를 장식하는 웅변대회가 그것이다. 웅변을 끝내고,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 정면 태극기에 깍듯이 예를 갖추고 내려오는 연사의 비장한 표정도 생생하다. 소질 없는 나는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지만, 같은 학교 참가자를 응원하기 위해 여러 번 동원된 경험이 있어 그렇다.

당시엔 웅변대회도 참 많았다. 6월은 특히 그랬다. 주제도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반공, 호국, 보훈, 애국 등등. 그리고 대회에서 입상자가 나오기라도 하면 전교생이 모인 아침 애국조회시간에 당사자를 단상에 불러 격려하던 풍경도 기억난다. 가끔 입상자의 즉석 웅변이 녹음기를 틀듯 재탕되기도 하고. 그런 날이면 조회시간은 영락없이 길어지면서, 6월 볕에 쓰러지는 아이들이 꼭 한두 명씩 생겨나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련한 먼 옛날 얘기 같지만.

6월이면 생각나는 것이 어디 웅변대회뿐인가. 각종 보훈행사가 줄을 이었던 기억도 새롭다. 반공과 국가안보가 국시였던 시절이라 행사의 다양함도 상상을 초월했었다. 사회적인 경건함을 유도하고 음주가무를 자제하는 분위기도 상당했었다. 자율적이었는지, 정책적이었는지는 나중에 가늠된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지금과 비교하면 참 많은 것이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6월의 방송가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전쟁의 상흔과 슬픔, 이별, 특히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 묻어나는 음악과 노래들이 전파를 많이 탔다. 그중 1963년 화천 수색중대의 젊은 장교가 백암산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중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썼다는 시에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여 가곡으로 탄생한 ‘비목’은 단연 인기(?)였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시 내용대로, 절박한 상황에서 돌무덤과 나무 비로 전우의 넋을 기리고 황망히 떠난, 그 처절한 흔적이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이 노래를 머리가 커서는 야유회나 남녀가 모인 장소에서 마치 여자들을 의식한 듯, 고상함을 잃지 않으려는 듯 애쓰며 부른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물론 당시 풍조가 유행가보다 가곡이나 팝송을 무기(?)로 내세워 여자들의 관심을 사려는 경향이 많아 그랬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또 비목을 꼭 6월에만 부르라는 법은 없지만 내용을 무시한 채 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었다는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낯 뜨겁다.

한때였지만, 모윤숙 시인을 좋아한 적이 있다. ‘렌의 애가(哀歌)’ 등 그의 시가 이루지 못한 절절한 호소력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표현이 나의 젊은 감성을 자극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해 6월 “산 옆/외로운 골짜기에/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아무말,/아무 움직임 없이/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보니 그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소위였다. 시인은 말없는 주검을 바라보며 그가 남겼을 마지막 말을 들으려 애를 썼다.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 뿜어 나온다/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이라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읽고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군대를 씩씩하게 입대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6월, 그 속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전쟁의 아픔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또 호국 반공으로 무장됐던 기성세대들의 긴장감이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사실 왜곡에 동조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이 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뿐인 고귀한 목숨을 바쳐 지켜낸 곳이고, 나라를 세우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젊은 용사들의 희생 덕에 얻어진 것임을 잊어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이 사회와 국가가 남아 있는 시대의 희생과 소외자들을 좀 더 따뜻하게 포용해야 한다. 나아가 보훈(報勳)의 의미도 더 확대해야 한다. 호국 보훈의 달이라는 6월 첫날 세 가지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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