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전경 10곳을 뽑아 시를 남겼는데 3경은 천향각(天香閣)으로 천향춘만(天香春晩)을 지었다.
봄의 연못에 붉은 원앙새는 서로 사랑하는데(春塘계계太生憐)/ 풀은 이끼 같고 버들가지는 연기 같다(草似芳茵柳似烟)/ 행자궁의 궁녀들은 분주히 길을 오가는데(杏子宮衫?挾路)/ 좋은 향기가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천지에 풍긴다(仙香一陣계陽天)
시는 천향각의 늦봄을 노래한 것으로 시각, 후각 및 감정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는 좋은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온 천지에 풍긴다고 하여 이곳이 건물의 명칭처럼 좋은 향기가 있는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천향각은 존재하지 않아 위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이유는 ‘동궐도’에 천향각의 건물명칭 표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궐지’에는 천향각의 내용이 나오므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동궐도’에도 분명히 그려져 있을 것이다.
‘궁궐지’의 ‘천향각’ 조에 ‘척뇌당의 서북쪽에 있는데 효종 4년(1653)에 세웠다’라고 되어있고 척뇌당(滌惱堂) 조에는 ‘애련정 북쪽에 있는데 숙종 33년(1707)에 세웠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숙종이 짓은 ‘척뇌당’ 시에는 ‘삼지(三池)의 동쪽에 새로운 정자를 세우니…’라고 되어 있다. 그럼 척뇌당의 위치는 삼지의 동쪽에 있으므로 ‘동궐도’에 의하면 존덕정 앞에 보이는 3개 연못(현재 통합되어 ‘반도지’라 칭함)이 있고 그 동쪽 언덕에 3칸 크기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바로 척뇌당이다. 천향각의 위치는 척뇌당의 서북쪽 건물에 위치함으로 ‘동궐도’를 보면 쉽게 천향각을 추정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존덕정의 북동쪽에 있어 척뇌당과 존덕정 및 천향각이 3각형을 이루며 후원 건물로는 특이하게 담장으로 둘려져 있고 중국풍의 건물이 바로 천향각이 된다.
후원의 정원건물은 대부분은 담장 없이 자연과 어울려져 있지만, ‘동궐도’의 천향각은 사방으로 담장이 둘려져 있고 대지가 진입로보다 높아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담장에는 별도의 출입문이 없어 프라이버시(독립성)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담장은 곳곳에 구멍이 뚫어 외부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을 사용하고 있고 특히 정면의 담장 구멍에는 빗살 창살을 붙여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출입구는 전돌로 만든 홍예문으로 별도의 문(門) 없이 바로 계단이 설치되고 이를 통해 마당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이런 방식은 전통건축에서 보기 힘든 것으로 매우 특이한 진입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정면은 창호 없이 개방되어 있고, 배면은 중앙 칸에만 창문이 있고 양쪽 퇴칸은 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동궐도’가 맞는다면 천향각은 온돌방이 없이 전부 마루로 된 곳이다. 천향각은 지형을 이용하여 마당을 도로보다 높게 하여 외부에서는 내부가 안 보이게 하고, 내부에서는 외부를 조망하게 설계되어 있어 약간은 비밀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본다.
이곳을 신당(神堂)으로 추정한 연구도 있지만, 신당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영조 대왕이 궁궐 내부에 있던 신당을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정된 건물의 담장 내부공간은 개방적이고 외부에서 자연을 빌려오는 고급스러운 조경기법인 차경을 사용하고 있으며 건물 배면의 亞자형 창호 사용은 여자의 공간에서 주로 사용되어 휴게건물이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일성록’ 정조 19년 3월 10일에서 ‘신하들과 후원에서 꽃구경하면서 천향각에 어좌를 설치하고 여러 신하가 품계에 따라 뜰에 늘어서고 유생들은 그 서쪽에 섰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므로 천향각은 큰 마당이 있어야 하는데, 존덕정의 부근에서 큰 마당을 가지고 있는 곳은 이곳뿐이므로 추정한 이곳이 천향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