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박규리씨가 첫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刊)를 냈다.
박씨는 등단 직후부터 8년간 전북 고창의 미소사에서 절의 살림을 맡은 공양주로 지내왔다. 그곳에서 썼던 시들로 이번 시집을 펴냈다.
수록작들은 절의 공양주라는 시인의 독특한 위상이 만들어낸 '경계의 노래'들이 주류를 이룬다. 시인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도승도 아니고, 속세에서 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박씨는 마치 성과 속의 세계를 왕래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라는 듯, 인간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노랫가락을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 마을/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보이지 않아도 보이고/듣지 않아도 들리는/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봄, 한낮' 중)에서는 세속적 욕망을 털어내지 못한 자의 갈등하는 내면이 드러난다.
"어젯밤 산행온 젊은 여자 둘/대체 그중 누가 나와 내 방 앞을 서성이나/젊은 사미승 참다못해 문을 여니/법당 뒤로 언뜻 검은 머리 숨는 게 아닌가/(중략)/거기서 기다린다고 이번에는/헛기침으로 짐짓 기별까지 놓았는데/이 환.장.할. 봄날 밤, 버선꽃 가지 뒤로/그예 숨어 사라지다니"('천리향 사태' 중)에서는 절집 세계의 일상이 저잣거리의 삶과 다를 바 없게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인간적 욕망을 비우지 못해 자주 번민하고, 때로 스님들의 일탈심리를 엿보며 웃음을 흘리기도 하지만 '예사스런 공양주'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절집 생활 8년은 미물에서도 아름다운 불성(佛性)을 찾아낼 만큼 시인의 눈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절에서 키우는 잡종개인 '반달이'가 눈보라 속 혹한에서 "제가 기른 고양이 네 마리 다 들여놓고/저는 겨우 머리만 처박고 떨며 잔다"며 안쓰러워하던 시인은 "오체투지 한껏 웅크린 꼬리 위로 하얀 눈이 이불처럼 소복하다"('성자의 집' 중)며 한마리 개의 마음에 깃든 불성이 또다른 절집 한 채를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124쪽. 6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