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르 천둥 달리는 소리 들린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겠다. 빗소리 와르르 마른 마당 덮쳐오면 비릿한 흙냄새 또 한 번 퍼올리겠다. 콧속으로 엄습해오는 추억 속 내음, 환하게 웃는 미소. 내 기억 속 마당은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숱한 등장인물들을 불러들이며 늘 빗소리와 함께 등장한다.
“아이구, 비온데이. 퍼뜩퍼뜩 나온나.”
“야들아, 다 젖는데이. 빨리 안 나오고 뭐하노?”
어머니 재촉에 구석구석에서 달려 나온 6남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삽을 챙기신 아버지 밖으로 달리시고 마른 빨래 급히 들여지고 마당에 널려진 삶은 나물 비닐 째 둘둘 말아 들이고, 농기구 몇 가지에 마지막으로 자전거까지 헛간으로 들여놓으면 금세 비설거지는 끝이 난다.
후두두둑, 빗방울 뚫기 시작하면 비로소 잠잠해지는 마당. 몇 장 특별 간식 부침개로 배를 채운 우리 남매들, 마루에 두 다리 늘어트리고 고개 까딱거리며 바라보는 그 비가 쏟아지는 마당은 참, 평화롭다. 적시면 적시는 대로 흠뻑 젖어줄 줄 아는 흙 마당의 여유. 한 없이 쏟아내는 장마 비 감당할 수 없을 땐 질퍽질퍽 제 속까지 다 토해놓는다. 마침내 햇살 나오면 그 속 달래줄 거라 믿을 줄 아는, 기다릴 줄 아는 여유. 무를 대로 물러터진 그 속 단단하게 채우고 또 다시 마당으로서 제 소임 꿋꿋하게 해 낼 줄 아는 미련하리만치 성실한 책임감. 우리 6남매가 나고 자란 그 아버지 품 속 같은 흙 마당을 요즘엔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시멘트로 단단하게 중무장한 아파트 마당에선 그런 여유가 없다. 쏟아내는 소나기도 밀어낼 뿐 충분히 받아주지 않는다. 배수로를 만들어 물은 물대로 자기 갈 길을 가고 키 큰 꽃나무 몇 그루 철 따라 꽃을 피우고, 나무는 나무대로 규칙적으로 잘 길러지는 아파트 마당에선 계획된 친절한 도시 내음만 있을 뿐 마음 푸근한 흙 내음이 없다. 놀이도 계획적으로 식사도 휴가도 계획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사람들. 주말 아침부터 몇 천원 용돈을 들고 PC방으로 달리는 청소년. 늦도록 학원을 돌다 온 그 저녁 짧은 여유시간을 스마트폰 채팅이나 핸드폰 게임으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문득 내 어린 날의 푸근한 친구와도 같은 흙 마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즈음 감히 꿈꾸고 싶다. 항아리 몇 개 오롯이 장 냄새 키우는 장돗대가 있는 마당을. 키 낮은 채송화 빽빽하게 엉켜 흙을 달래고 장독대 옆으로 몇 그루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 푸짐하게 열릴 테고 특별히 아버지 좋아하시던 백일홍 한 그루는 꼭 기르고 싶다. 말간 얼굴로 웃고 있을 그 마당엔 봄꽃처럼 화사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면 좋겠다. 인터넷 게임도 잊고 스마트폰도 먼 이야기처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 또래 친구들과 섞여 목청껏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공간. 도심에서 오염된 팍팍한 어른들의 인심도 단숨에 눈 녹듯 녹여낼 수 있는 그런 풋풋한 공간. 마당 한 켠 지붕 낮은 다실에선 차향이 넘쳐나, 다시 도심 속에서 활기차게 살아갈 그 에너지 넉넉하게 얻어갈 수 있는 그런 마음 따뜻한 흙 마당을 감히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