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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칼럼]기적

 

오늘은 8월17일이다. 오늘로부터 276년 전인 1740년 8월17일은 베네딕토 14세가 교황에 승좌한 날이다. 교황이 되기 전에 그는 교황청의 기적감별 업무를 담당했던 경력이 있다. 교황이 되기 전에 로마대학을 발전시키고 문화재 보존에 힘을 썼던 것으로 보아 교육과 문화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즈음 유럽의 문화적인 분위기는 로코코 풍이었고,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감리교 창시의 시발점이 된 영국국교회(성공회)의 웨슬리신부가 형제들과 함께 부흥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이 때 교회의 기적감별 판단이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었는데, 담당자는 보고를 받은 기적사건이 진정으로 신의 현현에 의한 것인지를 조사하고 판단하여 통보를 해주어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특임판사와 유사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판결에 따라 기적을 행한 사람은 자칫하면 이단이 되거나 정신병자로 몰리고, 한편 신에 의한 기적이라는 판결을 받으면 복권에 당첨된 것 이상의 효과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꿈에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의 내용이 기적으로 판결받게 되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 유럽각지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오고, 아이콘(icon·성화)에 침구를 해서 불치병이 나았다는 것이 확증되면 그 아이콘을 제작한 수도원은 아이콘 제작 판매로 인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8세기 레오 3세 치하에서는 성 화상 파괴가 있었다. 명분은 아이콘 숭배가 우상숭배라는 이유 때문이었으나 그 내면에는 아이콘 판매 수입을 둘러싼 교회와 수도원과의 경제적 갈등 요인도 한 역할을 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거짓으로 판단되면 비록 마녀사냥은 사라진 시대였지만 그 사람은 이단이나 정신병자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면 사회에서 매장되는 것은 물론 혐오인물이 되어 마을공동체 안에서 거주하기 힘들었다. 판결에도 일정부분 부정이 개입될 수 있는 개연성은 있었을 것이다. 또 이 판결들은 정통과 이단을 판가름하는 판례로 사용되기 때문에 판단할 때는 요즘 헌법 재판소 만큼이나 신중했을 것이다.

과학이 요즘 같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10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 국가들은 이슬람국가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멸시했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 땅에 들어서서 그들의 문화를 보고, 음식 맛을 본 기독교 용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개한지를 깨달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야만인 취급하며 학살로 자존심을 세웠다. 기독교도 당연히 철학과 과학이 있었으나 모두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고, 그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잘 안 풀리면 신의 뜻으로 정리하고 그에 관한 더 이상의 연구에 소극적이었다. 여전히 신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문화에서 르네상스가 찾아왔지만 이것도 알프스 이남에 국한된 것이었고 수많은 비의와 기적이 난무하고 괴담도 속출했던 시기에 계몽주의를 맞이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활약하고 있는 현대사회라고 해서 비의와 기적, 괴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과학으로 인해 많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다. 한국에서는 1995년경에 기독교계에서 ‘휴거’논쟁이 활발했고 사이비 이단종파들이 난무하여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종교를 이용하여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하는 개인과 종교단체도 있지만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정신에 의해 이들이 불법을 행하지 않는 한 이를 심판할 그 어떤 정부기구도 없다. 정통이라는 몇 교단에서 임의로 특정교단을 이단이라고 심판하는 경우는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요즘에도 합법적인 기적이 있다. 주식대박, 부동산 대박, 발명 창업대박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권력을 쥔 몇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기적을 창출한다. 이 기적을 심판하는 사람들도 종종 연관되어 있어서 국민들은 정직한 판결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기적은 난무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이들도 기적을 행하는 세상이다. 또 누군가가 판결했던 사람들의 기적을 또 판결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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