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밤 빗소리가 이렇게 산뜻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예년에 없던 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나직한 빗소리에 모처럼 편한 잠을 이루었다. 다음날 새벽 눈을 떠 보니 가을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물러가고 올 여름은 빚쟁이처럼 야반도주를 한 셈이다.
새벽 운동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이 어제 무지개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서울 하늘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가을 문턱에 걸린 무지개를 보며 경탄을 하던 얘기를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동문서답이었다. 무지개는 우리 동네 하늘에도 찬란했다. 우연히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쳐 마당으로 나오니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어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느라 정작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지금까지 본 무지개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얘기하는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나도 몇 해 전 하남시를 다녀오는 길에 팔당댐 부근을 지나면서 무지개를 보았다. 얼마나 크고 색상도 선명하던지 운전 중에도 수시로 눈이 가고 혹시 사라질까봐 조마조마 하는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지 대성리가 가까워지도록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영롱한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순간순간 찾아오는 시련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에게 주는 축복처럼 경이롭고 어느새 마음은 평화로 가득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무지개를 보게 되는데 어느 날에는 흐릿하게 떠서 금방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쌍무지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지개를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환성을 지르기 쉽다. 성경에 등장하는 무지개는 홍수로 세상을 벌하는 하느님이 보여주는 용서의 표시로 나온다. 평소에 친분 있는 집안의 혼사에 축시를 써서 낭송한 일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물론 양가의 부모님께서 모두 기뻐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부와 통화를 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도리인데 사정이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되는 신부의 목소리는 밝고 깍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성의로 짐작되는 등기우편물의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놀라움을 멈추지 못했다. 카드에 손으로 직접 쓴 내용은 간결하고도 아름다웠다. 그 날의 감동이 결혼식장을 지나 결혼생활에서 궂은 날이 오더라도 반드시 무지개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혹시 무지개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나의 모습을 무지개로 간직하겠으니 동의해 달라는 내용은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 후 무지개를 볼 때마다 그 아름답던 신부와 예쁜 글씨가 떠오른다. 한 여인의 명석하고도 결연한 의지에 동참을 하면서부터 얻은 후유증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게가 실리는 그러나 즐거운 변화였다.
오늘은 오후 늦게 빗방울을 뿌리더니 저녁 어스름에 그친다. 이미 해가 진 뒤라 무지개는 볼 수 없었다. 한 번 놓친 무지개는 언젠가는 만나겠지만 무지개도 결국 햇빛이 있기에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맑기만 한 하늘에도 종일 비가 내리는 날에도 무지개는 없다. 우리의 삶도 땀 흘린 뒤의 휴식이 달콤하고 뜨거운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풍요로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