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불
/박형준
아버지가 죽은 방에서
늙은 어머니가
가을 이불을 꾸민다
서리 내리는 계절
창호지에 드나드는
저녁 그늘 수놓인다
이제 집 마당에
서리는 부풀어
어는 어둠 속에 반짝이며
깔리는지
고향 집
늙은 어머니가 꾸미는
가을 이불 한 채 찬란하다
-시집‘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2011년
아버지가 죽은 방에서 가을 이불을 꾸미는 늙은 어머니는 어떤 빛깔로 물들고 있는 걸까 푸르고 높은 가을하늘에 깔리는 구름 이불들은 제 각각의 무늬를 연출하는 그윽함과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어머니는 가을이 오면 풀 먹인 호청을 다듬이질로 매끄럽게 손질해서 향기로운 이불을 꾸며주시곤 했다. 살포시 서리가 내리는 새벽녘 끌어당기는 이불깃에서 어머니의 정성어린 사랑을 듬뿍 느끼며 달콤한 숙면을 취하곤 했다. 창호지를 비추며 드나드는 저녁 그늘을 배경으로 앉아서 한 땀 한 땀 그리움을 꾸며가고 있은 어머니의 짙은 그림자, 붉은 알전등 밑에서 밤늦도록 스스로의 독백을 즐기고 계신 것은 아닐까. 가을은 깊어 서리는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부풀게 깔리고 고향 집 늙은 어머니가 꾸미는 찬란한 가을 이불이 몹시도 그리운 날이다. /정운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