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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유럽을 대표하는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볼테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톨레랑스 문화의 정수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일갈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신분에 따른 권력을 행사하는데도 그 후과에 대한 책임은 엄격해야 할 터인데, 하물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의 무분별한 행사가 초래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더욱 엄중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촛불 정국을 초래한 사태가 ‘큰 힘에는 큰 기회가 따르고, 그 큰 기회들을 다 얻어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식으로 볼테르의 가르침을 오역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남용된 권력에 대한 책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발생했음을 전제한다. 선출된 대통령에게 퇴진과 탄핵의 책임을 물어야만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지난 수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적·공적 피해가 누적되었는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한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손실을 앞으로 감내해야만 하는지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오늘의 문제를 올곧이 처리하는 것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예방에도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를 교훈삼아 미래를 기획한다는 측면에서 볼테르의 가르침을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요컨대 사회적 손실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큰 책임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힘의 균형과 분배에 대한 구상이다.

무엇보다도 거버넌스(Governance)의 복원이 우선이다. 다양한 행위자가 함께 참여하고 협력한다는 차원에서 ‘협치(協治)’라고도 일컬어지는 거버넌스는 한때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실험되었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과정 그 자체가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형식적 장치로 기능하곤 했다. 때로는 거버넌스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각종 위원회가 난무하기도 했으며, 형식적 틀에 경도되어 합리적인 논의의 진전이 가로막힌 경험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한 사람이 백 보를 앞서가는 것보다 백 사람이 한보를 함께 내딛는 것이 공공사회의 발전을 가늠하는 올바른 척도이듯이, 거버넌스를 지향했던 과거의 한국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투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주변을 뒤돌아보면 공론장 형성이 눈에 띄게 축소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민과 관의 협치라는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러한데, 최근 불거지고 있는 학교예술강사 사업을 둘러싼 문체부의 ‘갑질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본격화된 예술강사 사업은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 및 애니메이션·디자인·사진·공예 등 8개 분야로 점차 확대되어, 올해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등학교 8천777개교에 강사 5천47명을 파견하고 있다. 문체부가 설립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총괄하고 전국 16개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됐으나, 최근 고용주체 일원화를 둘러싸고 문체부와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간에 좀처럼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문체부는 예술강사의 계약주체를 중앙으로 일원화하겠다는 기존 결정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당초 결정을 번복하겠다며 문체부의 입장을 따르지 않을 경우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지정을 취소하겠다며 겁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중앙정부가 민간기관은 물론 지역정부조차 협력파트너로 존중하지 않는 사례는 빈번하게 지적되곤 했다.

예술강사 사업의 경우처럼 우월적 힘의 행사로 인한 피해자는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5천여 명에 이르는 예술강사일 수밖에 없다. 힘의 행사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거버넌스의 복원을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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