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 억,
/박영옥
여자아이 둘 나란히 억새꽃 핀 길을 갑니다
한 아이가 한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가을볕이 억새꽃에서 반짝이고 억새는 휘어져 아이들을 숨깁니다
아이들 소근 대는 소리가 억새숲으로 번져갑니다
그리고 바람이 억새꽃 속에서 흔들립니다
아직 그 길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에서
지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유년의 고향이 항상 기억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향의 자연과 유년의 친구들은 언제 생각해도 생각할 때마다 눈을 감기게 한다. 포근해지기 때문이다. 그 소리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그 바람 소리도, 그 햇볕도, 그 반짝이는 억새꽃도, 그 친구도, 인생이라는 가시밭길에서 어떤 치료제보다 더 강력한 치유제가 되고 있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