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30 (수)

  • 맑음동두천 24.3℃
  • 구름많음강릉 26.3℃
  • 구름조금서울 23.5℃
  • 맑음대전 24.9℃
  • 맑음대구 23.5℃
  • 맑음울산 24.1℃
  • 맑음광주 23.2℃
  • 맑음부산 19.5℃
  • 맑음고창 23.4℃
  • 구름많음제주 18.8℃
  • 구름조금강화 22.3℃
  • 맑음보은 24.4℃
  • 맑음금산 25.7℃
  • 맑음강진군 22.7℃
  • 맑음경주시 26.9℃
  • 맑음거제 21.1℃
기상청 제공

[정윤희의 미술이야기]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발표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작품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시체 더미를 넘어서며 민중을 이끌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전혀 아름답게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신고전주의 회화에서는 여인들이 대개 이상적인 균형과 절제미를 지닌 매끄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삼색기를 들고서 민중의 기수 역할을 하는, 화면 중심에 위치한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장했고, 반쯤 벗겨진 드레스와 드러난 몸에는 얼룩이 묻어 있으며, 겨드랑이에는 털까지 나 있었다. 작품을 보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이미 대세적인 화가였으며, 그 이전에 발표했던 ‘키오스 섬의 학살’, ‘미솔롱기 폐허의 그리스’와 같이 다른 지역의 전쟁이나 혁명을 다룬 작품들로 대중들의 큰 반응을 이끌어낸 적이 있었다. 수십 년째 혁명과 반동이 반복되는 시국에 이성과 균형을 외치는 신고전주의 화풍은 지친 대중들의 정서를 전혀 반영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신고전주의 회화는 권력과의 유착관계로 신진 화가들의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살롱전에 출품되었을 때 왕위에 등극한 루이 필립은 이 작품이 후에 대중들에게 미칠 엄청난 영향력을 간파했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작품을 구매했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이 조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들라크루아는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처럼 혁명노선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 자신은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다비드의 작품들과 함께 프랑스의 격변을 다룬 대표적인 대작으로 등극하면서 들라크루아 역시 진보적인 역사화가로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들라크루아가 택했던 회화적 기법과 주제는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것이어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유럽의 낭만주의 사조에서 단연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는 기수로 등장하는 여인 말고도 그 주변의 인물들이 꽤나 인상적으로 묘사되며 어떤 인물들은 흉측하다고 해도 좋다. 물론 혁명의 한복판에서 죽음과 맞서고 있는 혹은 죽임을 당한 이들의 모습이니 그 편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당시 관객들의 기준에서 볼 때는 센세이션한 것이었다.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에서도 들라크루아는 인물을 표현할 때 이국적인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곤 하였다. 외국의 외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차용하기도 하였고, 외국인의 생김새를 인물에 적용하기도 했다. 들라크루아는 간혹 신비와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실루엣을 어두운 색으로 뭉그러뜨리거나 원근법을 무시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축적되어 온 공포와 우울을 무의식 속의 난장과도 같이 어지럽게 표현했다. 그를 위시한 낭만주의 작가들로 말미암아 이제 회화에서는 ‘우울’이 중심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종교화에서 지옥의 풍경이나 악마를 표현하는 데나 쓰였을 법한 묘사가, 그리고 오브제의 배경을 처리하는 데나 쓰였을 채색방식이 동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기법으로 캔버스 전면에 등장한다.

이즈음 낭만주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미 유럽 전역에 퍼졌던 사조였고,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 분야에서 우세했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형태와 주제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한 갈래로 정의내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파도의 소용돌이를 그린 터너의 작품이나, 고야의 마드리드 학살을 그린 작품, 괴테의 ‘파우스트’, 베토벤의 교향곡이 모두 낭만주의에 속하지만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주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굳이 공통점을 꼽으라면 신과 자연, 인간의 감성과 꿈 등 내적에서 기인하는 풍부한 영감을 작품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점이다. 과연 프랑스 혁명은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서 유럽전체를 그 이전과는 동떨어진 시대로 옮겨놓았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고무 받은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민족적·지역적·정치적 상황에 맞게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고, 예술적·영적 지표 역시 수많은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이제 유럽대륙은 여러 개의 섬으로 분할되었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