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엽서
/이인원
꽃잎들 만발할 어디쯤에 어림짐작으로
둥근 수틀을 끼웁니다
침묵이라는 가장 예리하고 빛나는 바늘 끝이
팽팽한 아픔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바늘땀 소리에만 귀 열어놓은 채
오늘도 나에게 나를 보내고 있습니다
- 이인원 시집‘빨간 것은 사과’ / 세계사·2004년
고즈넉이 문가에 앉아 이마 숙이고 둥근 수틀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정숙하고도 고운 눈매. 사위는 고요한데 수틀에 끼운 옷감을 통과하는 실과 바늘 소리만 북―북― 그러나 시인은 지금 침묵이라는 바늘이 아픔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소리에만 귀 열어 놓은 채 나에게 가을엽서를 보내고 있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