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는, 분홍
/김효선
발끝까지 나를 안다고 했나요?
날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데도 분홍이라고 읽는 당신
기차는 종종 레일을 벗어난다
리본이 달린 것들이 나 여기 있어. 나야 나, 오빠들, 내 이름이 분홍이야.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건 얼굴을 알아보는 오랜 습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당신을 찾아 구름은 또 흘러간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불쑥 비에 젖은 발톱에 분홍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김효선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우리는 때로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 내가 가진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인식한 그 색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극히 자의적인 그 해석을 고집한다. 나는 어두워지고, 그래도 당신은 나를 분홍이라 하고, 서로 마주 보던 기찻길 위의 당신은 레일을 벗어나 리본을 단 분홍, 분홍을 찾아 달린다. 그렇게 나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당신을 찾아 나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서로의 관계를 종국으로 치닫게 하는 이러한 배반의 감정은 발끝까지 나를 안다고 했던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평행선에서 어느 한쪽이 먼저 비에 젖은 발톱에 상대가 원하는 색의 매니큐어를 칠해야 다가오는 화해의 시간. 당신과 내가 한 길로 맞추어 나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 /서정임 시인